“국보급 문화재 지진에 깨져 … 내겐 한점 한점 가족과 같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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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중국 쓰촨성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수많은 문화재가 파괴됐다. 두 여성이 18일 쓰촨성 관광 지역의 한 절터를 둘러보고 있다. [쓰촨 AP=연합뉴스]

“이번 지진으로 내가 1000여 명의 가족을 잃었다 하면 믿으시겠소.”

쓰촨(四川)성에서 최고 고고학자로 통하는 리즈궈(李治國·사진) 박사의 첫 마디는 기자를 어리둥절케 했다. 그가 설명했다. “1000여 문화재가 손상됐는데 내겐 한 점 한 점이 인간 생명 하나와 똑같소이다.” 리 박사는 이번 지진으로 시민 2000여 명이 넘게 숨진 두장옌(都江堰)시의 문물국(文物局·문화재관리국) 부국장이다.

21일 오후 청두(成都)에서 서쪽으로 60여㎞ 떨어진 두장옌 세계문화유산 현장에서 만난 그는 몹시 지친 모습이었다. 문물국이 관리하고 있는 4만여 점의 각종 유물을 보호하는 작업을 마무리하느라 10여 일 밤을 거의 새우다시피 했다는 것이다. 두장옌은 기원전 256년 촉(蜀)의 태수 이빙(李氷)이 아들과 함께 물살이 빠른 민장(岷江)의 수량을 조절하기 위해 축조한 제방이다.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리 박사는 지진이 나던 12일 오후를 기억했다. 두장옌 현장을 둘러보던 중 갑자기 땅이 흔들리고 옆에 있던 100여m의 외곽 벽이 무너져 내렸다. 순간 그의 뇌리에는 가족보다 먼저 사무실 옆 10여 개 창고에 보관 중인 4만여 점의 문화재가 스쳐 지나갔다. 곧바로 300여m 떨어진 창고로 뛰었다. 예상대로 창고가 비틀어지면서 층층이 보관 중인 자기와 서화 상당수가 떨어져 깨지거나 찢어져 있었다. 그는 문물국 직원 50여 명을 비상 소집했다. 그러나 지진에 놀란 직원들의 절반은 자리에 없었다.

저녁에 시에서 지원자 30여 명이 도착해 밤을 새워 문화재를 옮겼지만 역부족이었다. 다음날엔 비까지 쏟아져 창고 지붕 틈을 타고 들어온 빗물이 서화를 적시기 시작했다.

“그냥 눈물만 나왔습니다. 비닐로 덮긴 했지만 한계가 있었지요. 수백 년 된 국보급 문화재들을 지키지 못해 역사의 죄인이 된 심정입니다.”

리 박사는 13일 오전에야 가족들이 무사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문물국의 리샤(李霞) 과장은 14일 조카가 학교 붕괴로 숨졌다는 소식을 들었고, 창고 관리 직원인 양징샹(楊井祥)은 중학생 딸을 잃었다.

리 박사는 지진으로 가족을 잃었거나 가족이 다친 직원 10여 명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이 중 5명이 돌아와 밤을 새우며 문화재 구조작업을 펼쳤다. 작업은 계속돼 14일에는 자원봉사대와 인민해방군까지 가세하며 속도를 냈다. 그러나 모든 문화재를 창고 밖으로 꺼내는 데는 무려 일주일이 걸렸다.

구조된 문화재는 곧바로 5000여 개 상자로 옮겨져 청두 문물국 관할 창고로 이송됐다. 21일 오후에야 마지막 작업을 끝낸 그는 갈수록 비통한 심정이 더해진다고 했다. 국가 유물 60점과 성 유물 60점 등 각급 문화재 1000여 점이 손상된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국보급에 가까운 송대 시인 소정(蘇靜)의 죽시비(竹詩碑)에는 금이 갔다. 19세기 영국 여행가 이사벨라 퍼터가 동양 건축의 진수라며 칭송했던 칭시위안(淸溪園)의 지붕 기와와 입구 편액도 떨어져 깨졌다. 여기에 이빙 부자를 모신 사당인 이왕묘(二王廟) 전각은 심하게 훼손됐다. 리 박사는 “매몰된 생명도 중요하지만 수백, 수천 년 조상의 혼을 간직하고 있는 문화재 하나하나도 생명이기 때문에 이들을 보존하고 상처를 치료하는 데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장옌(쓰촨성)=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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