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는 고장 나도 못 고치는 자동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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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KBS는 고장 나도 고칠 수 없어 그냥 굴러가는 자동차다.”

최근 정연주 사장 사퇴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는 KBS의 지배구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이사협회 주최로 21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경영권 승계, 무엇이 문제인가’ 세미나에서다. 이날 주제토론에 참석한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의 김일섭 회장은 “KBS 이사회 구성이 정치적인 고려로 이뤄지면서 (KBS는) 이미 망가진 것”이라며 “KBS 이사는 한번 선임되면 (사장을 뽑고 연임을 결정하는) 막대한 권리를 보장받지만, 꼭 필요한 이사 해임 조항은 이사회 규정에 없어 정작 이사 본인들은 어떤 경우에도 해임되지 않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이사회가 KBS 사장을 추천하는 만큼 이사회도 경영진의 부진한 경영 성과에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하지만 제도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김 회장은 이처럼 제도적인 결함이 분명하지만 고칠 방법이 없다며 KBS를 “고장 나도 고칠 수 없는 차”로 비유했다. 정 사장은 2003년 취임 이후 누적적자가 1500억원을 넘어설 만큼 경영 성과가 부진해 KBS 안팎에서 사퇴 압력을 받고 있지만 임기(2009년 11월)를 채우겠다고 고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현재 11명으로 구성된 KBS 이사회는 노무현 정부 시절에 임명된 사람들로 정 사장의 사퇴에 부정적인 이사 수가 더 많다. 최근 친한나라당 성향의 이사 5명이 정 사장 사퇴권고 결의안을 이사회에 상정하려 했으나 정족수인 과반수를 채우지 못해 안건에 상정하지도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다. KBS 이사는 방송위원회 추천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러나 이날 세미나에서는 제도적인 결함을 감사원 등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보완하려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한국이사협회는 2002년 상장·등록기업의 경영투명성 확립을 위해 재정경제부·세계은행·OECD·대기업 등의 지원으로 설립된 비영리단체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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