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호냐 매도냐 盧씨 덕 봤던 민정系 바늘방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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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딱 4년전이다.당시 총선에서 전국구 의석은 거의 노태우(盧泰愚)대통령 몫이었다.
盧씨가 우격다짐으로 밀어넣은 사람들은 지금도 국회의원이다.골수 민정계라 할수 있다.그들에게 있어 盧씨는 은인인 셈이다.
그러나 작금 상황은 그들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盧씨를 옹호할 수도,그렇다고 매도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정말 어디론가 멀리 떠나가고 싶다.』입이라도 맞춘 듯 똑같은 얘기들이다.아니나 다를까.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는 요즘 의원들이 별로 없다.
정기국회 회기중인데도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특히 민자당의원들이 더하다.그중에서도 민정계 의원들이 그렇다.두문불출하고 있는것이다. 모임을 가져도 여의도밖에서 모인다.남들 눈에 띄기 싫어서다.지난달 31일 서울 강남의 한호텔에는 민자당 대구.경북의원들이 모였다.
『어떡하면 되느냐』는 화제로 모임은 시작됐다.그러나 결론이 있을수 없었다.
요즘들어 당무회의가 있는날 아침이면 가끔 재미나는 모습을 보게된다. 당사앞에서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의원들이 있다.아마도전날밤에는 떼고 다녔기 때문인 듯하다.하나같이 민정계다.
이제 그들에게 6공은 원죄나 다름없다.모두가 盧씨 때문이다.
발버둥 쳐봐야 소용없다.그들 입장에서는 사실 억울하기 그지없다. 그들은 『우리가 돈을 먹은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하소연한다. 이번 사건이 터지기 전만 해도『여차하면 탈당해 무소속 출마라도 하겠다』고 큰소리치던 사람들도 요즘은 기가 죽어있다.
이 판에 탈당했다가는 매도만 당한다는 생각이다.
몇몇 의원들은 그래서 일찌감치 지역에 내려가 살다시피하고 있다. 국회고 뭐고 상관치 않고 열심히 지역을 돌아다닌다고 한다.2주일째 내려가 서울로 오지 않는 의원도 있다.남다른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자칫하다간 부패에 동조한 5,6공 세력으로 몰려 낙동강 오리알신세가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다.사실 민정계의 존재가 없어질지 모른다.작금 상황이 물갈이의 명분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나쁜 여론속에 이번 사건으로 표가 또다시 10%이상 떨어져 나갔다』고 말하고 있다.
『다음총선은 정말 어렵다』는 하소연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기회에 민주계니 민정계니 하는 계파를 버리고 화학적 결합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는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눈치를 전보다 더욱 볼수밖에 없게 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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