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결백 세계 지도자-일본 미키 다케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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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전후(戰後)일본총리 가운데 가장 깨끗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은 미키 다케오(三木武夫.1907~1988)다.별명이 「클린(깨끗한) 미키」다.
금권에 찌든 일본정계의 굴레에서 51년7개월동안 의원생활을 해오면서도 청렴의 외길만을 걸어왔기 때문이다.그의 「클린 이미지」는 전후 일본 헌정사뿐만 아니라 개인생활에도 알알이 배어있다. 74년12월 총리가 되자마자 그는 정치정화(淨化)의 깃발부터 치켜들었다.그는 금권정치의 모태였던 무원칙적인 정치자금 모금방법과 선거활동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 정치자금규정법안과 공직선거법안을 의회에 제출,75년 중.참의원에서 통과 시켰다.
그는 76년 총리재임시 불거져나온 록히드 사건때는 금권정치의대부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전총리를 구속하는데 팔을 걷어붙였다.미키의 깨끗한 정치에 대한 신념이 없었다면 다나카는 구속되지 않았을 것이라는게 일본 정계의 정설이었다.
미키는 구속후에도 정계를 주물렀던 다나카의 금맥.파벌의 「미키 끌어내리기」 공작으로 2년만에 총리자리에서 밀려났지만 그의청렴성은 88년 사망후 부활한다.51년7개월에 이르는 의원생활의 「경상수지」가 적자로 나타났기 때문이다.89 년 유산정리에서 과세상 자산은 10억여엔이었으나 집을 담보로 한 차입금등이더 많아 400만엔의 부채를 남긴 것이다.물론 그의 차입금은 소파벌을 이끌기 위한 것이었음에도 51년여의 의원생활에서 축재가 없었다는 것은 「클린 미키」의 진면목이었다.그는 금전에는 적자,정치에서는 흑자를 낸 정치인이라는 국민의 판정을 받았다.
부인이 47년 아시다(芦田)내각에 뇌물을 줘 내각총사퇴를 불렀던 일본굴지의 대기업 쇼와(昭和)전공 오너의 딸이라는 점은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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