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스위스은행 계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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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스위스은행들은 「5S」를 자랑한다.비밀(secrecy)이 첫째고,안전(security).안정(stability).서비스(service),그리고 스위스 프랑화의 위력(strength)이다.은밀히 돈을 관리하는데는 안성맞춤이다.철저한 비밀의 전통은 히틀러의 나치정권 때문이다.1933년 히틀러는 유대인을 비롯,일부 독일 국민들이 스위스로 자본을 도피시키고 이 돈이 독일내 히틀러 반대파들을 돕는다는 얘기를 듣고 격노했다.꼬리를 잡느라 비밀경찰 1,000여명을 스위 스에 풀었다.
스위스는 예금주 보호를 위해 34년 「은행비밀법」을 제정했다.71년 개정된 이 법은 이후 지구상의 자본도피 천국들에 살아있는 경전(經典)이다.업무상 기밀을 누설한 행원에 대한 처벌은6개월미만의 징역 또는 50만프랑이하의 벌금이다 .그러나 한번어기면 좁은 스위스사회에서 영원히 매장되는 불문율이 더 무섭다.자랑하는 서비스의 하나가 공란(空欄)의 수표책자(blank checkbook)다.아무 나라에 가서 그 나라돈 표시로 수표를 끊어도 은행이 추적하며 뒷바라지 해준다.예금을 찾아 귀찮게환전할 필요가 없다.
아르헨티나의 독재자 페론은 스위스은행에 2억달러를 예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이란혁명후 호메이니정부는 팔레비왕이 스위스은행에 예금한 수십억달러를 돌려달라고 요구했다.스위스당국의 대답은『개개은행들의 문제로 당국이 관여할 바 아니다.
적절한 법률적 접근 채널은 열려 있다』로 언제나 같았다.국제여론을 의식해 은행측은 「비밀유지의 목적은 무고한 예금주의 보호에 있다」「좋은 돈(예금)도 주체못하는데 검은 돈을 굳이 유치할 이유가 없다」고 누누이 강조한다.검은 돈 세탁 규제조치는거듭 취해지고 있지만 미심쩍은 예금주의 보고를 의무화하는 법개정안은 지난해 금융계의 로비로 무산됐다.스위스 「3대은행」보다18개 군소 민간은행의 비밀은 악명이 높고 비은행 금융기관들은은행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사각지대 에 놓여 있다.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의 딸 소영(素英)씨 부부가 미국에 들여오다 적발된 20만달러의 출처는 스위스은행계좌로 알려져 있다.그 베일은 盧씨가 사법처리된 뒤 양국간 「적절한 법률적 채널」을 통해서만 벗겨질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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