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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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삼성전자가 1~3월 세계 TV시장에서 20.8%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한 기업이 세계시장을 20% 이상 장악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LG전자도 3위 자리를 굳혔다. 올 들어 삼성과 LG의 TV 매출은 30% 이상씩 늘어나 12%의 증가율에 그친 2위 소니를 압도했다. 두 기업의 성과는 소니가 촉발한 가격 인하 경쟁 속에서 일궈낸 것이어서 더욱 뜻 깊다.

TV는 단순한 내구 소비재가 아니다. 소비자에게 가장 많이 노출되는 만큼, 기업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TV만 한 게 없다. 소니·제니스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전자업체치고 TV시장을 장악하지 않은 경우는 없다. TV는 여전히 종합적인 기술력의 결정판이다. 삼성과 LG의 성공도 그동안 LCD·반도체 같은 부품에서 세심한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서 묵묵히 투자해온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이다. 이제 ‘Made in Korea’ TV는 미국 가전제품 판매장에서 제일 좋은 위치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먼지를 뒤집어쓴 채 싸구려로 팔렸던 10년 전 기억이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요즘 세계 정상에 오른 한국 제품들이 적지 않다. 조선업체들은 세계 선박 수주량의 1~5위를 싹쓸이하고 있다. 반도체 아성은 굳건하고, 휴대전화와 자동차 수출도 순풍을 타고 있다. 경영자들의 뛰어난 의사결정, 땅 위에서도 배를 만드는 창의적인 발상, 시장 흐름을 적절하게 읽어내는 마케팅 능력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사실 한국만큼 전 산업에 걸쳐 고루 국제경쟁력을 갖춘 나라도 찾기 어렵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한다. 우리 기업의 빛나는 실적에는 환율 상승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환율 흐름이 뒤바뀌면 상황이 어떻게 뒤바뀔지 모른다. 여기에다 일본 업체들은 손을 맞잡고 영토 회복을 노리고 있고, 중국은 전자·조선·철강 분야에서 추격 속도를 늦출 기미가 없다. 정상에 오르기보다 수성이 훨씬 어렵다는 게 세계 산업사의 교훈이다. 한국 기업들도 자만심과 게으름을 경계하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