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좁은 유럽에도 전용도로 있는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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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호 18면

“괜찮다면 인터뷰를 하고 싶습니다.”
(기자)
“좋습니다. 제가 신문사로 찾아가죠.”
“계신 곳이 부산 아닌가요?
저희가 찾아가도 되는데….”(기자)
“아닙니다. 제가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겠습니다.”
“아, 예…? 예!’(기자)

14년간 한반도 6만㎞ 누빈 네덜란드인 본스트라

네덜란드인 자전거 매니어 얀 본스트라(59·사진)와 인터뷰는 이렇게 성사됐다. 그가 사는 곳은 부산 양정동. 취재 요청을 받은 지 일주일 뒤, 자전거로 꼬박 이틀을 달려 서울에 나타났다. 사이클에 붙어 있는 거리계 숫자는 511.2㎞. 아마 인터뷰를 위해 화석연료에 의지하지 않고 달려온 최장거리 기록일 것이다.

그는 “마침 휴가 기간이라 자전거 여행을 나설까 하던 참이었는데, 중앙SUNDAY가 계기를 만들어줬다”고 설명했다. 본스트라는 1994년에 네덜란드의 측량회사 보스칼리스 인터내셔널 비브이의 한국지사에 발령이 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됐다. 이후 14년 동안 우리나라 곳곳을 자전거로 6만㎞나 달렸다.

지구 한 바퀴 하고도 반을 돈 거리다. 그가 배낭에서 한반도 지도를 꺼냈다. 전국 도로망이 초록색으로 표시돼 있다. 기자는 설명을 듣고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는 “자전거로 다녀온 길을 초록색으로 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도에서 문산·철원 DMZ까지, 완도에서 강릉까지 그가 그린 초록색 표시는 끝이 없었다.

개인 홈페이지(http://user.chollian.net/~boonstra)도 있다. 영어와 네덜란드어로 된 사이트에는 그의 자전거길 기록은 물론,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는 자전거길 지도와 안내, 숙박 정보 등이 꼼꼼히 기록돼 있다. 지난 2년간 세 차례나 왕복하면서 확인한 정보다.

사람의 품성이나 취향은 고향을 닮는 것일까. 그는 네덜란드에서도 자전거 도시로 잘 알려진 흐로닝언 출신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지금껏 31개국을 자전거로 누볐다. 승용차를 가져본 적도 없다. 가족 나들이 때 굳이 필요하다면 렌터카를 이용한다.

그는 “자전거는 내 삶의 가장 소중한 도구”라며 “교통수단이면서 건강을 지키는 방법이고, 낯선 사람과 낯선 곳을 만나는 채널”이라고 말했다. 본스트라에게 최근 우리나라의 자전거 열풍에 대해서 물어봤다. 그는 “자전거 인구가 늘어나는 것이 좋은 일이긴 하지만, 자전거가 레저 수단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교통수단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강 등 강변의 자전거길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칭찬을 하면서도, 도심 내의 자전거길은 아직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인도에 파란 페인트로 줄만 그어 놓은 ‘무늬만 자전거길’에 대한 말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자전거가 제대로 된 교통수단으로 등장하려면 인도 자전거길로는 부족합니다. ‘차가 다니기에도 비좁은 차도에 무슨 자전거길이냐’는 사고로는 안 됩니다. 길 좁은 유럽 도시에도 자전거 전용도로는 잘 갖춰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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