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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시평

'蔣介石은 왜 패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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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 어디에도 오늘날 우리 당처럼 노후하고 퇴폐한 정당이 없다. 얼이 빠졌고, 기율도 없으며, 옳고 그른 기준조차 없다. 이 따위 당은 이미 오래 전에 부수어 쓸어버려야 했다."

요즘 이야기가 아니다. 국민당 총통이었던 장제스(蔣介石)가 공산당에 패해 대만으로 쫓겨나기 1년 전인 1948년 1월에 한 말이다.

1947년부터 49년까지 중국 대륙의 지배권을 놓고 공산당과 한판 싸움을 벌일 때, 전략적인 우위에 있다고 여겨졌던 국민당이 실제로는 연전연패 당하자 장제스는 이렇게 개탄했다.

"어떤 면에서 보더라도 우리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군사장비.전투기술.전투경험이라는 점에서 보아도 공산당은 우리와 비교될 수 없다. 식량.사료.탄약 등 군수면에서도 우리는 공산당보다 10배나 풍부하다. 하지만 승리를 위해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패배하고 있다. 왜 그럴까?"

장제스의 패인 분석은 이렇다. "항일전 당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민당 안에 도사린 타락과 부패는 실로 기가 막힌다. 국민당 지도부의 정신상태는 이미 썩어서 무너졌고 그들의 도덕성은 야비하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그런 상태였다."

결국 '장제스는 왜 패했는가'의 저자 로이드 이스트만의 결론처럼 "공산당이 국민당을 패배시킨 것이 아니라 국민당 스스로 무너진 것이다."

1949년 1월, 패배한 장제스는 대만으로 쫓겨갔다. 그는 몇 달간의 은둔기간을 거친 뒤 뒤늦게 당 개혁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미 중국 대륙은 공산당의 손에 넘어간 뒤였다.

새로 한나라당을 이끌게 된 박근혜 대표는 반세기 전 중국 대륙의 장제스 총통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장제스가 국민당의 문제를 간파하고 있었듯이 박근혜 대표 역시 한나라당의 문제가 뭔지를 안다. 하지만 안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실천적.발본적으로 고쳐야만 되는 것이다. 그것도 겉이 아니라 속부터 진짜 변해야만 된다.

천막 치고 들어간다고 부패한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이 하루 아침에 깨끗해질 리 만무하다. 108배를 했다고 국민이 흔쾌히 마음을 풀 것 같지도 않다. 부패와 절연하고 지역주의를 청산하며 정책정당으로 재탄생하겠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는 이미 숱하게 들어왔다. 하지만 한나라당 안팎엔 아직도 부패의 흔적이 남아 있고 지역주의에 안주하려는 세력도 여전하다. 또 이렇다 할 차별화된 정책 역시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신에겐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다"는 충무공의 비장한 각오로 무장하고 나선 박근혜 대표의 '장한' 포부만으론 난파 직전의 한나라호가 거센 탄핵 역풍을 뚫고 나아가기에 역부족인 것처럼도 보인다.

한나라당이 진짜 변하려면 천막이나 컨테이너 당사로 옮기는 것에만 그치지 말고 거기에 제대로 된 콘텐츠를 채워넣어야 한다. 그리고 끝까지 길게 봐야 한다. 변화하는 세상에 눈을 돌려 이제까지의 시각과 발상을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원칙은 갖되 새로운 물결에 대한 유연성도 몸에 익혀야 한다. 그리고 우직하게 가야 한다. 그것으로 자신의 존재의미를 증명해야 한다. 오늘 한나라당의 모습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듯이 이런 긍정적 변화 역시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한나라당이 목전의 총선만 의식한 반짝하는 '변화쇼'가 아니라 진짜 변화의 몸부림을 우직하게 지속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박근혜 대표에게 어느 시인의 시 한편을 전한다.

"사람들은 하루 아침에 꽃이 피었다고 말하지만/어느날 갑자기 떠오른 별이라고 말들 하지만/어느날 그 사람이 너무 쉽게 변해가고/하루 아침에 그가 무너졌다고 말들 하지만/꽃도 별도 나무도 사람도/하루 아침에 쉽게 변하지 않는다/…(중략)… 우리는 다만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작은 일을 끈질긴 사랑으로 밀어갈 뿐이다."

거듭, 한나라당의 진짜 변화를 기대해 본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