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新인간>4.유네스코 무형문화재과 한준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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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유엔 등 국제기구를 직장으로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여전히 생소하고 어려운 과제다.그도 그럴 것이 우선 응시와 채용방법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다 어떠어떠한 업무가 있는지도 잘 모르기때문이다.국제기구에 근무하는 한국인이 드문 것도 이 때문이다.
더욱이 최소한 2개 외국어 정도에 능통해야 하는데다 온통 서양인들이 판치고 있어 일단 채용되더라도 겪어야할 어려움은 이만저만이 아니다.그래서 정부에서 파견하는 한시직이나 교포2세.외교관 자녀 등이 차지한 얼마 안되는 정규직이 고작 이다.
파리에 본부를 두고 있는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의무형문화재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준희(30)씨는 그런 점에서 예외다. 번듯한 외국 유명대학의 졸업장도 없다.그렇다고 배경있는 집안 출신은 더욱 아니다.인하대 불문과를 나온 순종(?)한국 처녀다.
그런 한씨가 프랑스로 와서 전공을 미술로 바꾼 후 이를 무기로 UNESCO 공개채용시험에 응시,당당히 요원이 된 것이다.
『무형문화재 제도를 두고있는 나라는 한국.일본.태국.필리핀등6개국에 불과해요.인간문화재가 유형의 문화유산만큼 중요하다는 인식을 회원국들에 알리고 이를 찾아내 제도적으로 보존토록 권장하는 일이 주 업무죠.』 그녀는 UNESCO가 펼치고 있는 「살아 있는 인간보물 계획」(Living Human Treasure Program)에 따라 사라지고 있는 각국의 무형문화재를발굴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
180여 회원국들에 협조공문을 보내 각국의 실태를 파악하고 보존 필요성 유무를 1차적으로 판단한다.이어 전세계에 흩어져있는 관련 문화의 전문가를 찾고 현장답사를 의뢰하고 조정한다.이런 과정을 거쳐 한씨는 최근 베트남의 전통음악과 라오스의 칠기를 되살리기로 했다.이제 최종보고서를 만들고 해당 국가에 한국과 유사한 무형문화재 제도를 도입토록 설득하는 마지막 마무리만남기고 있다.
그녀는 국제 문화사업에 뛰어들게 된 계기를 『어려서부터 미술에 대한 관심이 컸기 때문』이라고 간단히 말했지만 그 과정은 사실 복잡했다.
***대학졸업후 전공 바꿔 89년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우연히 재학시절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파리에 루브르 학교(Ecole du Louvre)라는 희귀한 대학과정이 있다는 것을알게됐다.
1882년 설립된 이 대학은 일반 대학과 달리 미술품에 대한전반적인 지식과 박물관 운영을 위한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프랑스 박물관 관장들의 대부분이 이 학교를 거쳐갔다는 사실에서 그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서류와 면접을 거쳐 3년동안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고대 이집트의 미술을 전공한 그녀는 92년 한국인 최초의 이 학교 졸업생이 됐다.
별로 쓸모없는 학문이라고 단정할 만한 이 전공을 살릴 기회는예상외로 빨리 찾아왔다.그해 가을,30세이하를 대상으로 「젊은전문인」이라는 UNESCO의 공채시험이 실시됐다.
응시자 300명중 5명이 선발됐다.역시 한국인 최초의 UNESCO 공채 1기생이 됐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제 국제기구에 적극적으로 진출해야 해요.그래야 국제무대에서 국가의 영향력도 커질 수 있겠지요.특히 여성들에게는 매력적인 직업인데도 소극적인 접근에 끝나는 경우가많아 아쉬워요.』 ***60대1 경쟁뚫은 .國內派' 어느새 능력을 인정받았는지 다음 달 1년반만에 한 단계 승진을 앞두고 있다.독신인 한씨가 현재 받는 대우는 준외교관 예우와 세금없이연봉 4만2,000달러(한화 약3,300만원).
돈으로 따지기보다 국제기구에서 민간외교의 일선에 서있다는 자부심을 사달라는 그녀의 당찬 포부에서 공허하게만 들리던 국제화시대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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