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 아버지께 베이징 금메달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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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노리는 김민지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표적을 정조준하고 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 아버지 영전에 바치겠다”고 말했다. [사진=송봉근 기자]

“저 잘 되라고 싫은 소리도 하는 건데, 아비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아버지)

“왜 몰라, 다 알아. 진짜 열심히 해서 올림픽 금메달 딸 거야.” (딸)

부녀(父女)는 매일 만났다. 만날 때마다 싸웠다. 아버지는 딸이 더 잘할 수 있는데 요령을 피우는 것 같아 마뜩찮았고, 딸은 한다고 하는데 알아주지 않는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이제는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가 없다. 아버지는 하늘나라에 계신다.

사격 여자 스키트 국가대표 김민지(19·한국체대)는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한다. 그는 11일 경남 창원종합사격장에서 끝난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경쟁자들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1위를 했다.

12일 창원사격장에서 김민지를 만났다. 아버지 얘기를 꺼내자마자 큰 눈이 빨개지더니 금세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버지 김대원씨는 지난해 11월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청천벽력 같은 말기암 판정을 받은 지 6개월 만이었다.

민지는 아버지한테서 총을 배웠다. 김씨는 취미로 클레이(날아가는 접시를 쏘는 종목) 사격을 하다 1996년부터 본격 선수 생활을 시작해 전국대회 우승도 여러 차례 했다. 아빠를 따라다니다 자연스럽게 총을 잡은 민지는 놀랄 만한 재능을 보였다. 딸의 가능성을 발견한 김씨는 아예 개인 코치로 나섰다. 세계 최고 선수의 경기 비디오를 밤새워 분석했고, 성능 좋은 총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다녔다.

민지는 총을 잡은 지 1년 반 만인 2005년 5월, 국내 대회에서 72점(75점 만점)을 쏴 비공인 세계신기록 겸 한국신기록을 세웠다. 당시 중앙일보는 ‘아빠와 함께 쏘면 명중 또 명중’이라는 제목으로 부녀의 사연을 소개했다. 민지가 16세, 안산정보고 2학년 때였다. <본지 2005년 8월 4일자 15면>

하지만 민지는 그리 즐겁지 않았다. 총 쏘는 게 싫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썩 내키지도 않았다. 그림 그리기를 더 좋아했지만 사격을 하면서부터 붓을 놓아야 했다. “다른 선수만큼만 해도 되는데 그 몇 배를 시키니까 정말 미웠어요. 아빠 욕심을 위해 날 희생시킨다고 생각했죠. 이젠 아빠 마음을 좀 알 것도 같은데…. ”

민지는 아버지를 보내고 마음을 다잡았다. 아버지와 한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김민지는 요즘 연습에서 71∼72점을 쏜다. 베이징에서 그 정도만 쏴도 금메달은 확정적이다. 사격대표팀 변경수 감독은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이보나(더블트랩 은메달)가 아깝게 놓친 클레이 종목 첫 금메달을 찾아올 복병”이라고 전망했다.

김민지가 말했다. “아빠가 늘 하늘에서 저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럴 때마다 힘이 솟고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베이징 금메달을 아빠한테 바치고 싶습니다.”

글=정영재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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