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측 “대통령 발언 의미 잘 새겨야” 朴측 “사진 찍기 위해 만났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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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10일 청와대 오찬 회동은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시작됐다. 박 전 대표는 약속시간 5분 전인 오전 11시55분쯤 청와대 본관에 도착, 회동 장소인 백악실로 입장했다. 뒤이어 도착한 이 대통령이 호주ㆍ뉴질랜드 방문에 나서는 박 전 대표에게 “기후가 우리나라하고 반대죠” 하고 묻자 박 전 대표는 “초겨울이에요”라고 답하며 웃었다.

상견례를 마치자 배석자들은 물러났고 두 사람의 단독 면담이 시작됐다. 한식ㆍ일식이 곁들여진 퓨전 음식과 계절 과일, 제주산 녹차 등이 제공된 오찬 회동은 1시간50분가량 진행됐다.

두 사람의 면담내용을 이례적으로 박 전 대표가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직접 발표하기로 하면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됐다. 한 측근은 “당초 유정복 의원이 하려 했으나 박 전 대표가 방침을 결정했다”며 “박 전 대표는 ‘배석자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또 (기자들)질문이 나올 텐데 잘못 전달될 수 있다’고 정리했다”고 밝혔다. 유정복 의원은 “발표 내용은 박 전 대표가 대통령과의 회동을 마치고 나와 직접 정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측은 지난해 12월 회동을 마친 뒤 총선 공천 시기 등 대화 내용을 설명하면서 서로 다른 얘기를 해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진 일이 있었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청와대 회동을 마친 직후 결과 발표를 앞두고 허태열ㆍ유정복 의원, 이정현 당선자 등 측근들에게 면담 내용에 대해 설명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는 대체적으로 이날 회동 결과를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가 많았다는 것이다. 핵심 의제였던 친박 인사의 복당 문제에 대해 이 대통령이 구체적인 약속을 하지 않은 점이 우선 문제로 지적됐다. 한 측근은 “사전에 의제도 정하지 않고 초청을 했는데 막상 대통령은 먼저 제안한 내용이 없다”며 “그럴 거라면 외국 방문을 하루 앞둔 사람을 무엇 때문에 그리 급하게 불렀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비판했다. 그는 “괜히 웃는 사진이나 한 장 찍으려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 쪽의 시각은 다르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친박 인사 복당에 대해) 공감한다고 표현한 의미를 새겨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당의 입장도 있는데 그 이상 얘기하는 건 곤란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한 측근은 “의사소통의 길이 열린 것만 해도 큰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 측에서는 박 전 대표가 어렵게 성사된 자리에서 쇠고기 문제 등을 거론하며 이 대통령을 몰아세운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기류도 흘렀다. 하지만 청와대 인사들은 혹시라도 박 전 대표를 자극할까봐 말을 아끼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날 발표를 박 전 대표 측에 일임하고 입장 표명조차 꺼리는 것도 괜한 논란을 촉발하지 않으려는 취지로 해석됐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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