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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CEO의 삶과 경영 모진 바슈롬코리아 사장<8·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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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 29면

모진(43·사진) ㈜바슈롬코리아 사장은 최근 취임 2주년을 맞았다. 그에게 지난 2년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미국계 눈 관련 전문기업의 한국법인 최고경영자(CEO)로서, 남편과 세 아들을 건사해야 하는 주부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2년 전 사장에 취임하면서 내건 경영 화두가 ‘변화’였기에 더욱 그랬다.

“냄비 속 개구리처럼 안주하기 싫어”

“한 TV 프로그램에서 ‘Deep change or slow death’라는 말을 본 적이 있어요. 냄비 속 개구리는 물을 서서히 가열할 경우 환경 변화를 인식하지 못한 채 죽어간다고 합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예요. 환경 변화에 맞춰 재빨리 변하지 않으면 서서히 죽어가기 마련입니다.”

그는 사장 취임 이후 ‘도전적인 실행’을 모토로 기존 관행을 하나 둘 바꿔 나갔다. 우선 오래전 내놨는데도 잘 팔리지 않는 ‘저회전(slow-moving) 제품’은 과감하게 시장에서 거둬들였다. 건강과 웰빙이 중요시되는 시대를 맞아 제품의 안전성 관리를 최우선시하겠다는 의지에서다. 대신 주력 제품의 판매를 늘리는 데 힘을 쏟았다. 한 예로 하루용 렌즈 ‘소프렌즈 데일리 디스포저블(일명 HD 렌즈)’에 대해선 잠재 소비자인 젊은 층을 겨냥해 탤런트 김옥빈이 출현한 TV CF를 만들어 방영하는 등 마케팅을 강화했다. ‘선택과 집중’의 경영 원칙을 실행한 것이다. 또 변화 경영이 안착할 수 있도록 우수한 인재를 스카우트하고, 워크숍 등을 통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기업문화를 형성해 나갔다. 덕분에 취임 1년 만에 매출이 20% 이상 늘어 지난해 5월 미 본사에서 실적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그가 이처럼 변화를 강조하는 것은 그의 삶과 깊은 연관이 있어 보인다. 그의 삶 자체가 변화의 연속이었다. 모 사장은 청소년기를 미국에서 보냈다. 교육부 공무원이었던 부친의 미국 교육관 파견 발령으로 그는 중 3 때인 1980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87년 대학(조지 메이슨대 회계학과)을 졸업하고 부친의 복귀 발령으로 가족과 함께 귀국할 때까지 8년간 미국 생활을 했다.

한국에 돌아와 그가 선택한 첫 직장은 한국방송공사(KBS)였다. 유창한 영어 실력 덕분에 당시 88올림픽을 앞두고 KBS가 가동에 들어간 올림픽방송 운영국에 특채된 것이다. 외국 방송사들의 원활한 중계방송을 돕는 게 그의 임무였다. 그는 1년여간 방송국 일을 하면서 아나운서를 해볼까도 생각했으나 마음을 바꿨다. 전공을 살려 호텔 경영에 도전하기로 했다. 수십 대 일의 경쟁을 뚫고 신라호텔에 입사하는 데 성공했다. 판촉부에 배치된 그는 탁월한 실적을 올려 그해 최우수영업상까지 받았다.

하지만 호텔과의 인연도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이듬해 미 생활용품 업체 P&G의 국내법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처우가 좋았을 뿐만 아니라 미국 유학 경력을 살리려면 아무래도 외국계 기업이 유리할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그는 여성 생리용품 ‘위스퍼’를 비롯해 블렌닥스·아이보리·제스트·팬틴 등 각종 생활용품 브랜드의 성공적인 마케팅으로 주목받았다.

30대 초반 젊은 나이에 임원으로 승진한 그는 97년 P&G의 동북아시아 마케팅 매니저로 발령받아 일본 고베에서 근무하게 됐다. 2000년 그는 또 한 번의 변신에 나선다. P&G와의 11년 인연을 끊고 미국의 다국적 제약회사 MSD의 국내법인 영업마케팅 상무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마케팅 실력은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탈모치료제(프로페시아)의 매출을 80%나 늘린 공로로 전무로 승진한 뒤 2004년 미 MSD의 뉴저지 본사 마케팅 임원으로 발탁됐다.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그는 2년 전 바슈롬의 한국법인 대표 제의를 덥석 받아들였다. CEO로 일하고 싶다는 꿈을 놓칠 수 없었던 것이다.

커리어 우먼으로 변화무쌍하게 살아오다 보니 그는 항상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미국 유학 중인 첫째(17)는 어쩔 수 없다 쳐도 둘째(11)와 막내(4)를 제대로 보살피는 게 쉽지 않다. 미 프로골퍼 출신인 남편도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골프 아카데미를 운영하다 보니 양육엔 큰 도움을 못 준다. 그래서 그는 요즘 저녁 약속은 가능한 한 9시 이전에 끝내고 친구와의 만남도 가급적 줄이려 노력한단다. 두 아들과 매주 두 번 이상 같이 운동하는 원칙도 지켜가고 있다.

가정과 일 두 마리 토끼를 좇느라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여성의 사회 진출을 늘리려면 성공 사례를 더 많이 만드는 게 필요한 만큼 힘 닿는 데까지 노력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한국엔 바슈롬이 어떤 회사인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어요. 올해로 창립 155주년을 맞는 바슈롬은 ‘눈’이라는 한 우물만 파온 유서 깊은 회사입니다. 콘택트렌즈를 비롯해 눈 관련 의료기기와 의약품 등이 무려 2000여 가지나 됩니다. 제품의 다양성과 함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계획입니다.”

모 사장은 2010년까지 우리나라 모든 가정에 바슈롬 제품이 한 가지 이상 비치되게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90명의 종업원을 둔 바슈롬코리아는 올해 매출 목표를 지난해보다 40% 늘어난 700억원으로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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