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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사라의KISSABOOK] 환상문학에 올라타고 고고학의 세계로 풍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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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판타지를 공상으로의 도피라고 생각하는 건 오판이며 오히려 현실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심리학자 가와이 하야오의 말이다. 그에 의하면 판타지란 망상이나 꾸며낸 이야기의 중간쯤에 존재하는 자체 생명력을 지닌 장르이다. 가상공간이나 까마득한 미래를 넘나드는 공상의 산물이라고만 생각해 온 독자라면 갸우뚱 생각해 볼 말이다.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판타지를 섭렵했다고 자부하는 책벌레들을 위해 오늘은 랄프 이자우의 『잃어버린 기억의 박물관』(비룡소)을 소개한다. 혹시 역사책? 과거지향적인 아리송한 제목이 암시하듯 이 작품은 환상문학의 별미다.

어느 날 제시카와 올리버의 아버지는 박물관의 고대유물과 함께 감쪽같이 사라진다. 쌍둥이 남매는 아버지를 찾기 위해 시간의 알리바이를 요구하는 깐깐한 과거를 향해 떠난다. 현실에 남아 바빌로니아의 흔적을 캐는 제시카와 환상 세계를 헤매 다니는 올리버. 그들에게 판에 박힌 안일한 우주여행을 기대했다면 이쯤에서 안전벨트부터 단단히 매시길! 신화와 고고학, 상상과 역사가 절묘하게 결합된 고답적인 대장정에 얼이 쏙 빠질지 모른다. 고증된 과거로부터 오싹한 상상의 세계까지 쉴 틈 없이 곤두박질치다가 치솟는 청룡열차에는 멀미약도 없으니까.

아무리 흥미진진한 판타지라고 해도 이 정도 분량의 책을 진득하게 읽어낸다면, 어린 독서가로서 대단한 진일보를 한 셈이다. 거기에 신화와 고고학의 지식까지 덤으로 얻었으니, 꿩 먹고 알 먹는 만찬 중의 만찬 아닐까.

내친 김에 고고학 기초 지식부터 다지고 싶은 욕심쟁이 어린이를 위해 라파엘 드 필리포
의 『어린이 고고학의 첫 걸음』(상수리)을 소개한다. 고고학이 어떤 학문인지로부터 시작해, 설형문자·상형문자·파피루스·호모사피엔스 등의 기본적인 고고학 어휘까지 가르쳐준다. 각 시대의 유물을 꿰뚫는 시간여행을 통해 역사가 건네주는 지혜를 배우게 된다.

대수롭지 않게 묻어버린 과거가 모이면 한 사람이 살다 간 흔적이 되고, 개개인의 발자취가 모여 역사와 고고학이 되다니…. 두 권의 책을 통해 내가 살고 있는 어제와 오늘의 중요성을 깨우친다면, 그보다 근사한 보너스가 어디 있으랴.

대상 독자는 묵직한 책 덤벨로 독서 근력의 왕(王)자 복근에 도전하는 13세 이상의 청소년과 맛과 영양을 동시에 채워 주고픈 엄마들.

임사라<동화작가> romans8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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