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놀란 예상밖 무죄-심슨 재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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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3일 심슨에게 내려진 무죄 평결은 그동안 재판과정에서 끊임없이 제기된 인종차별시비가 결국 재판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나타내고 있다.12명중 9명이 흑인으로 구성된 배심원들은이날 평결서에서 검찰이 제시한 혈액.머리카락 등 에 대한 DNA분석결과 심슨이 범행추정 시간 당시 집에 머무르지 않았다는 등의 정황증거들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대신 변호인측이 제기했던 인종편견에 의한 증거조작 주장을 수용해『죄가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전문가들은 이번 공판이 검찰로서는 힘겨운 싸움이었다고 진단하고 있다.검찰은 첨단 과학수사를 통해 사건현장 등에서 채취한 혈액이 심슨의 것과 동일한 것임을 제시했으나 채취과정과 과학적인 신빙성에 관한 의문을 해소하지 못해 받아들여지 지 않았다.
특히 살인의 결정적인 물증이 되는 흉기를 찾아내지 못하고 주변 및 정황증거 등만을 기초로 기소한 것이 가장 취약점이었다는지적이다.나아가 그 기량에 있어 검찰의 스승뻘이 되는 노련한 변호인들은 불리한 증거 속에서도 마크 퍼먼이라는 타격점을 찾아내 이를 인종 편견문제로 연결함으로써,사건의 본질을 살인에서 인종차별로 전환한 것등이 평결을 승리로 이끌어낸 결정적인 요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날 무죄 평결이 나옴으로써 심슨은 이날중 즉각 석방되는 것은 물론 사실상 자유인이 된다.물론 현행법상 검찰이 항소할 수는 있지만 1심때 제시했던 증거 이상의 결정적인 물증을 제시하지 않는 한 재판 결과를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에서 항소를 포기할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항소심에서는 특히 1심과 같은 사실심리는 되풀이하지 않고 법률적용과 증거채택에 있어서의 적법성 여부,또 증거해석 등이 법률에 의해 제대로 이뤄졌는지 등만을 따지므로 번복의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견해들이다.
이날 무죄 평결이 나옴으로써 흑백간의 갈등은 한층 더 심화될것 같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미 평결에 앞선 여론조사 등에서 흑인과 백인들은 심슨의 유.무죄 여부에 대해 인종별로 현저한 시각차를 보이는 등 깊게 골이 패 있는 상태다.특히 흑인을 주축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당초의 예상과는 달리 하루도 안돼 무죄로 결론지었 다는 것에 백인사회나 수사당국은 더욱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이는배심원들로 하여금 증거 등에 의한 판단보다는 인종적인 편견에 의거해 결론을 내렸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미국 사법제도의 전반에 주는 부정적인 영향도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먼저 돈이 있으면 얼마든지 최고의 변호인을 동원해 방어해 낼 수 있다는 유전무죄식 사고방식과,재판이 마냥지연되는 데 따른 낭비 및 배심원제에 의한 평결 이 원래의 취지와는 달리 편견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는 점 등이 부정적인 요소로 지적되는 부분들이다.이에 따라 배심원제도를 비롯해 재판절차법 등에 대한 폭넓은 개선주장이 거세게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다만 이번 재판을 통해 미국 사법 제도가 검찰이나 수사기관과 같은 공권력의 판단에 맹종하지 않고 변호인측에도 문제점들을끝까지 지적,규명해 낼 수 있는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은 인권보호 차원에서 높게 평가받야 할 측면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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