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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텔레마케팅 시장을 죽여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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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요즘 호남 지역 지방자치단체들이 제일 공을 들이는 게 콜센터 유치다. 공해 없고 일자리 늘어나고, 인구 유입에도 한몫하기 때문이다. 수도권 기업들 역시 땅값·인건비가 싸고 표준말이 가능한 지방으로 콜센터를 옮기는 추세다. 한 발 먼저 콜센터 유치에 눈을 돌린 전남 순천시는 이미 수천 명의 시민이 새 직장을 얻었다. 광주시의 경우 6000여 명이 콜센터에서 일하고, 더 많은 콜센터를 끌어들이기 위해 시청 직원들이 열심히 수도권 기업들을 돌아다니고 있다.

콜센터는 전화나 인터넷을 통해 고객과 기업을 연결하는 접점이다. 크게 두 분야로 나뉘는데, 고객의 문의 전화를 처리하는 인바운드 업무와, 고객에게 신상품이나 새로운 서비스 가입을 권유하는 아웃바운드 부문이 그것이다. 이 아웃바운드 업무가 바로 텔레마케팅이다. 기업들로선 인바운드 업무는 돈만 들어가지만, 아웃바운드에선 새로운 수익이 생겨나면서 텔레마케팅 전성시대가 열렸다. 특히 대리점이나 유통망 구축이 어려운 기업일수록 텔레마케팅에 더욱 의존한다. 물론 소비자들은 시도때도 없이 걸려오는 성가신 전화에 뿔이 나겠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텔레마케팅은 30만 명 이상이 종사하는 신산업으로 성장했다. 국내 10여 개 대학에 텔레마케팅 관련 학과가 생겨났을 정도다.

최근 경찰이 고객 정보를 외부 텔레마케팅 업체에 넘긴 일부 대기업을 수사하면서 텔레마케팅 시장이 갑자기 얼어붙고 있다. 도마에 오른 하나로텔레콤뿐만 아니라 KT나 LG파워콤 등이 텔레마케팅을 사실상 중단해 버렸다. 이들 초고속 통신업체들은 전체 영업의 90% 가까이를 텔레마케팅에 의존해 왔다. 상황은 신용카드 업계나 보험, 유통업계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텔레마케팅을 활발하게 구사해온 이들 업체의 텔레마케팅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이로 인해 직격탄을 맞은 쪽은 대기업이 아니라 이들에게 외부 용역을 받는 텔레마케팅 업체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일부 영세 텔레마케팅 업체부터 문을 닫기 시작했다.

이번 분란은 애매한 법 규정 탓도 적지 않다. 정보통신망법 24조 2항은 개인정보 보호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고객에게 알리고 동의를 얻어야만 제3자에게 개인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다음인 정보통신망법 25조 2항은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개인정보를 위탁할 수 있는 예외를 허용하고 있다. 경찰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이에 비해 대부분의 업체들은 예외 조항을 근거로 보다 싼 비용에 텔레마케팅 업무를 외부 업체들에 아웃소싱하는 게 현실이다. 정부 주무부처의 해석도 왔다갔다하고 있다. 옛 정보통신부의 통신위원회는 아웃소싱 업체가 변경될 경우 기업 홈페이지를 통해 알리면 고객의 동의를 받은 것으로 간주했다. 반면 새로운 조직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일일이 고객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영어가 가능한 인도에는 텔레마케팅이 새로운 거대 비즈니스로 자리 잡았다. 인도는 미국·영국 기업들의 콜센터를 유치해 100여만 개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어냈다. 아시아에선 필리핀이 텔레마케팅 거점으로 성장하고 있다. 어차피 정보통신이 발전할수록 텔레마케팅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우리도 텔레마케팅과 개인정보 보호 사이의 균형 잡힌 기준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 지나치게 법을 엄격히 해석하면 텔레마케팅 시장 전체가 죽을 수도 있다. 외부 용역을 금지하고 기업이 자체적으로 직원을 고용해 텔레마케팅을 하라는 것도 현실과 거리가 멀다. 못을 박을 때는 작은 망치를 써야 한다. 물론 개인정보가 마구잡이로 허술하게 취급되어선 안 된다. 지금처럼 기업들이 판매나 유치 실적에 따라 돈을 지급하는 방식은 사라져야 한다. 대신 정해진 기간에 일정액을 주는 용역계약으로 바뀌어야 개인정보도 잘 보호되고 관리될 것이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