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 칼럼

당신은 울고 있습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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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당신은 웃고 있습니까, 아니면 울고 있습니까. 당신은 분하고 억울합니까, 아니면 부끄럽습니까.

당신은 마음속에 칼을 갈고 있습니까, 아니면 용서와 화해를 하고 싶습니까. 당신은 과거에 매어 있습니까, 아니면 미래를 바라보고 있습니까. 나는 권한이 정지된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무슨 마음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을까 궁금하다.

70%의 여론에 연일 탄핵 반대 데모가 일어나고, 열린우리당의 승리가 확실시된다는 소식을 접하며 "그래 내 계획이 맞았어. 역시 나는 뛰어난 승부사야"라며 흐뭇해 할 수도 있다. 아니면 갈기갈기 찢긴 이 현실을 보고 "이것이 다 나 때문인데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우울한 나날을 보낼지도 모른다.

*** 촛불집회 자제를 호소해야

나는 盧대통령이 울고 있기를 바란다. 부끄러워하기를 원한다. 대통령이 지금 상황을 안타까워한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그러나 반전(反轉)된 상황을 보고 웃고 있다면 우리는 희망이 없다. 나는 盧대통령이 그럴 리가 없다고 믿는다. 보통시민들도 앉기만 하면 나라 걱정인데 대통령이 그럴 수는 없기 때문이다.

탄핵의 결론이 어떻게 나든 우리는 매우 어려운 처지가 될 것이다. 탄핵이 거부되고,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대승했을 때 피바람이 불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대통령이 소신껏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될지 알 수 없다. 탄핵되는 경우 역시 질서있게 새 대통령을 뽑게 될지, 아니면 연일 데모와 소란으로 나라가 휩쓸려 갈지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이미 위기의 문턱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盧대통령이 지금 울고 있다면 탄핵 여부가 결정되기 전이라도 할 일이 있다. 노사모를 포함한 지지자들에게 더 이상 촛불시위를 하지 말 것을 간곡히 설득해야 한다. 우리는 매일 데모를 벌일 만큼 한가하지 않다. 盧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민주주의는 그 자신 때문에 위기에 놓여 있다. 국회의 결정이 옳든 그르든 결정은 결정이다. 이를 따르지 않는다면 대의민주주의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때 그때 광화문에 촛불을 들고 나오면 끝날 일 아닌가.

KBS를 포함한 방송사들에 공정한 방송을 하도록 직접 촉구해야 한다. 盧대통령의 입장에서 방송이 고맙고, 천군만마를 얻은 심정일지 모른다. 그러나 정말로 나라 장래를 걱정한다면 방송이 이런 식으로 가서는 안 된다. 유신.광주사태 때 총칼 아래서 어쩔 수 없이 재갈이 물렸던 때가 있다. 지금은 왜 그러는가. 정의를 위해서인가, 특정 이념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노무현 개인숭배 때문인가. 이런 방송 아래서 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고 보는가.

盧대통령은 이 기간 당파를 초월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청와대에 앉아서 열린우리당 의석수를 계산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으로서 의회와 정당과 어떤 관계를 유지해 갈지 고민해야 한다. 이번 사태도 대통령이 당파를 초월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대통령은 당의 리더인 동시에 나라의 지도자다. 그것이 항상 갈등의 요소다. 미국의 건국 아버지들도 그런 갈등을 겪었다. 그러나 워싱턴.존 애덤스.제퍼슨 등 초기의 대통령들은 당보다는 나라 쪽을 택했기 때문에 오늘의 미국이 있게 됐다. 대통령은 국가 지도자로서 여야를 초월해 양쪽을 어우를 수 있어야 한다.

*** 먼저 겸손하면 반대파도 승복

대통령이 이런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면 탄핵을 지지했던 사람들의 마음도 바뀔 것이다. 지도자는 따르는 사람이 있을 때 지도자다. 훌륭한 지도자는 그에 걸맞은 훌륭한 따르는 자들이 있을 때 세워진다. 리더십은 폴로워십에 의해 결정된다. 리더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돛단배가 아니다. 대통령을 뽑은 이상 믿고 따라야 한다. 지난 일년은 그렇지 못했다. 대통령 탓도, 그를 불신하는 측의 탓도 있었다. 그러나 이 시점 대통령이 먼저 겸손해진다면 반대자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대통령이 이 공백기간을 외롭게 보내기를 바란다. 이 사람 저 사람을 불러 "탄핵 이후 어떻고…"하는 식으로 번잡하게 보낼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고독해지기를 바란다. 그 가운데서 분명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우리의 미래를 비관도, 낙관도 하지 않는다. 총선에서 누가 승리하느냐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걸어보지 않았던 길을 걷는 것이다. 5000만명의 머리에, 1만달러의 소득을 가진 나라가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는다.

문창극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