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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배명복시시각각

빈곤과 부패의 악순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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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있는 한 외국인 회사에 다니고 있는 미엔(32)은 영어에 능통하다. 캄보디아 최고 명문대학인 캄보디아 왕립대학을 나왔다. 통역과 번역에서 대(對)관청 업무, 손님 접대와 안내까지 온갖 일을 다하고 그가 받는 돈은 한 달에 380달러(캄보디아에서 달러는 현지화처럼 통용된다). 1인당 국민소득이 589달러(2007년 기준)인 나라에서 그는 ‘행운아’에 속한다.

하지만 캄보디아 사람들이 다 미엔처럼 운이 좋은 것은 아니다. 도시 근로자의 월평균 급여는 50달러 선이다. 하위직 공무원들의 월급은 30달러에서 시작한다. 중앙정부 부처의 과장급 월급도 100달러를 넘지 않는다. 교사나 경찰의 월급도 50~60달러 선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현지 물가를 감안하더라도 생활급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이다.

프놈펜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경찰관이 운전자와 뭔가를 주고받는 장면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경찰관이 불러 세우면 운전자는 군말 않고 돈을 집어준다. 적당한 길목에 큰 통을 세워놓거나 검은 비닐봉지를 걸어놓고, 아예 내놓고 ‘통행세’를 받는 경우도 있다.

빈곤국에 대한 무상원조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해외 활동을 취재하기 위해 돌아본 몽골·우즈베키스탄·캄보디아 세 나라의 공통점은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는 점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위에서 아래까지 각계각층에 부정과 부패의 검은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경찰은 시민으로부터, 교사는 학생들로부터, 공무원은 민원인으로부터, 의사와 간호사는 환자들로부터 돈을 받는다. 돈을 끼워넣어야 결재판이 돌아가고, 인·허가는 물론이고 서류 하나를 떼기 위해서도 급행료를 찔러줘야 한다. 웃돈을 주지 않으면 수출입 화물은 통관이 안 된다. 월급만으로 생활한다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보니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는 생계형 부패다. 당연히 죄의식도 별로 없다. 국제투명성기구(TI)의 2007년 조사에 따르면 캄보디아 사람의 72%가 뇌물을 준 경험이 있다. 캄보디아의 부패인식지수(CPI)는 조사 대상 180개국 중 162위였다.

프놈펜에서는 벤츠나 BMW·렉서스 같은 고급 외제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캄보디아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띈다. 호화주택을 수십 채씩 보유하고 월세로만 매달 수만 달러를 챙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땅 부자도 많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들이다. 사회주의 경제에서 시장경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권력과 정보를 가진 사람 중심으로 국유재산의 사유화가 이루어진 탓이다. 각종 이권에 개입해 엄청난 부를 챙기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밑에서는 생계형, 위에서는 권력형 부정부패가 판치는 구조다. 눈을 씻고 봐도 공돈 한 푼 생길 데 없는 힘없는 서민들은 생존을 위협받을 정도의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캄보디아인의 35%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절대 빈곤층이다.

공무원들에게 생활급 수준의 급여를 주는 것이 부패를 줄이는 근본적 대책이다. 하지만 국가 재정의 절반 가까이를 원조에 의존하고 있는 캄보디아 정부로서는 주고 싶어도 줄 돈이 없다. 그러니 테이블 밑에서 이루어지는 검은 거래가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당연히 지하경제가 발달하고, 세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세수 부족은 만성적 예산 부족과 저임, 부패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규모 원조를 쏟아 부어본들 중간에 새는 데가 많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막막하다.

결국 최고지도층이 솔선수범하는 수밖에 없다. 한국이 빈곤과 부패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개발의 토대를 닦은 최고권력자가 적어도 돈에 관한 한 깨끗했기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다. 캄보디아 정부는 한국의 개발 경험을 발전모델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최고권력자부터 부패의 고리를 끊는 결연함을 보여야 한다. <프놈펜에서>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