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탄핵 철회는 기회주의 처신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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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을 비롯한 일부에서 탄핵 철회를 주장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의 이중적인 행동이며 적어도 지역구에서 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국회의원으로서 취할 책임 있는 행동이 아니다. 이는 국회 탄핵 표결에 참석하고도 비슷한 행태를 보이는 일부 민주당 의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탄핵소추를 발의했을 때도 여론조사에는 탄핵 반대가 찬성보다 다소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국회에서 가결될 경우 여권 지지층의 반발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부동층의 동정심 등으로 반대의견 규모가 더 늘어날 것이란 점은 예상이 가능했다. 그런데 여론이 나빠지니까 지금 와서 기회주의적 행태를 보이니 이런 사람들을 과연 정치인이라 할 수 있는가.

대의 민주주의는 책임정치다. 국가의 크고 작은 현안에 대해 의견을 수렴하고 부딪치는 이해를 조정하면서 결정을 내리고 책임지는 게 바로 정당과 정치인이다. 탄핵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통과시켰으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이 옳은 자세다. 상황이 불리하다고, 총선에서 표를 얻지 못할 것 같다고 해서 이미 내린 결정을 번복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특히 탄핵 철회는 법에도 없는 절차다.

선거는 질 수도, 이길 수도 있다. 그게 민주주의다. 지금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할 일은 어려움 속에서도 국민을 설득하고 총선 이후 상황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일이다. 여론이란 항상 변하는 것이다. 그 여론을 좇아 바람개비처럼 돌 생각인가. 이번에 국민의 선택을 못 받으면 그 다음에라도 받겠다는 각오로 정책을 다듬고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위기는 편법이나 꼼수로 극복되는 것이 아니며 그럴수록 정도를 걸어야 한다.

지금 와서 야당이 탄핵을 철회하겠다고 통사정한다고 해서 입장을 바꿀 유권자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오히려 원칙 없는 행동에 지지층마저 실망해 투표장으로 향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식으로 의원이 된들 무슨 일을 하겠는가. 정말로 국민을 실망시키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