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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경으로 본 원더풀 스포츠 ③마라톤 선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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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 25면

그리스의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올림픽스타디움으로 이어지는 국도변에 페이디피데스의 청동상이 있다. 그는 실존했던 인물이 아니라고 한다.

마라톤 선수의 100m 기록
한국기록(2시간7분20초) 보유자 이봉주는 기록을 세울 때 100m를 평균 18.10초(시속 19.87㎞)에 뛰었다. 전문가들은 마라톤 선수가 자신의 100m 최고기록의 75%에 해당하는 스피드로 풀코스를 달린다면 2시간 벽을 돌파할 수 있다고 본다. 보통 마라토너의 100m 최고기록을 13초로 잡을 때 꾸준히 17.3초의 속도로 달려야 한다는 뜻이다.
 
신기록 공장 따로 있다
세계기록은 베를린·로테르담·시카고 등 이른바 3대 기록대회에서 양산됐다. 특히 로테르담 마라톤은 표고차가 최고 20m에 불과한 평탄한 코스와 경기가 열리는 날 마라톤에 가장 적합한 섭씨 10도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기록의 산실로 꼽힌다. 코스 주변의 풍경이 아름다워 선수가 느끼는 지루함이 덜한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마라톤 선수는 작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역대 올림픽 육상의 남자 스프린터들의 평균 키와 몸무게는 1m83㎝·68㎏, 남자 마라토너들은 1m69㎝·56㎏(이봉주 1m68㎝·55㎏)이다. 두 종목 선수들은 사용하는 근육이 다르다. 근육은 속근과 지근으로 나뉘는데 속근이 많은 사람은 우람해 보인다. 속근은 순간적인 힘을 발휘하는 데, 지근은 지구력을 발휘할 때 적합하다. 속근이 발달하면 지근이, 지근이 발달하면 속근이 약화된다.
 
유령 선수 페이디피데스
기원전 490년 마라톤 전투에서 페르시아를 격퇴한 뒤 승전보를 알리려 아테네까지 달려간 병사 페이디피데스를 기념하는 경기가 마라톤이라고 한다. 승전보를 전한 페이디피데스는 탈진해 죽었고 그가 달린 거리는 마라톤 코스의 기준이 되었다. 하지만 페이디피데스라는 사나이는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이 스포츠 사학자들의 견해다.
 
마라톤 코스는 고무줄?
1908년 런던올림픽 마라톤 코스는 윈저성에서 화이트시티 스타디움까지 41.8㎞로 예정됐다. 하지만 대회본부는 352m를 늘려 에드워드7세가 앉은 로열박스 앞에서 골인하도록 했다. 24년 파리올림픽부터 현재의 42.195㎞가 정착됐다. 보스턴육상협회도 올림픽 기준에 맞추어 24년 코스를 조정했다. 그러나 몇 년 뒤 정밀 측정한 결과 161m나 짧았다. 보스턴 마라톤은 27년 대회부터 공식 기록을 인정하고 있다.
 
첫 우승자는 우편집배원
1896년 그리스올림픽에서 페이디피데스의 전설이 부활했다. 아테네의 마라톤교(橋)에서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까지 40㎞를 달리게 한 것이다. 첫 근대올림픽에서 마라톤은 그리스인에게 매우 중요한 경기였다. 25명의 선수가 참가했고, 그리스 마루시마을의 우편집배원 스피리돈 루이스가 2시간58분50초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한국인 첫 마라토너 마봉옥
한국인으로 마라톤에서 처음으로 공식 기록을 낸 선수는 마봉옥이다. 마봉옥은 1927년 조선신궁체육대회에서 3시간29분37초로 우승했다. 31년엔 김은배가 2시간26분12초의 세계기록(비공식)으로 우승했다. 한국인이 처음 출전한 올림픽은 32년 LA올림픽이다. 권태하가 9위, 고교생 김은배가 6위를 차지했다. 한국인 최초의 올림픽 우승자는 손기정(36년 베를린올림픽).
 
용감한 그녀, 깁슨
1966년 4월 제70회 보스턴 마라톤에 로베르타 루이즈 깁슨이라는 23세의 여성이 번호 없이 출전해 3시간21분40초 만에 참가자 500여 명 중 126위로 골인했다. 당시 여성은 마라톤에 참가할 수 없었다. 첫 여성 마라톤대회는 78년 애틀랜타에서 열린 제1회 국제여자마라톤이다. 81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84년 LA올림픽부터 여자마라톤을 정식종목으로 채택했다.
 

이봉주와 하일레 게브르셀리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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