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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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2부 불타는 땅 1945(6)여순 감옥에서 안중근이 사형선고를 받은 것은 1910년 2월이었다.그리고 3월,임시토지조사군관제가 제정되던 그때 안중근의 사형이 집행되었다.나라 잃던 바로 그해 의사는 이국 땅에서 일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미 황실번영과 한일친선을 위한 강령이 민원식.이재극에 의해「정우회」라는 이름으로 조직되고 있었다.
모든 공문에 메이지 연호의 사용을 지시하면서 일본통감 데라우치가 부임했다.8월에 들어서며 통감관저에서 데라우치와 이완용.
조중웅의 3자회담이 있었고,이어서 16일 합방조약안을 각의에 상정할 것에 합의하였다.
그렇게 하여 통감 데라우치와 총리대신 이완용은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일왕에게 양도하는 한일합병조약을 조인하고 29일 공포하였다. 대한제국은 조선으로 이름이 바뀌었고,조선총독부가 설치되면서…나라를 잃었다.민족정기 또한 그렇게 유린되고,질곡의 어둠이 이 땅을 내리덮었다.
그리고 40년이 넘는 세월이 무참하게 흘러갔다.강물은 여전히소리쳐 흐르고,산허리를 감도는 안개 속으로 그 빛도 찬연하게 아침햇살은 강토를 비췄지만,친일분자와 대일협력자들만이 배를 두드리는 속에서 굶주린 백성과 나날이 헐벗어 가는 산하만이 눈감고 숨 죽여 묵묵했을 뿐이었다.
뜻있는 자들이 하나 둘 통한을 짓씹으며 먼 훗날을 기약한 채제땅을 뒤로 하고 떠나갔다.헐벗어 가는 땅에도 때가 되면 가오리가 찾아와 그 긴 다리로 물가를 거닐었지만 어찌 미물이라 하여 몸과 마음의 허기를 잇지 못하는 남은 백성의 심사를 몰랐으랴. 1944년,그해 1월.총독부에서는 긴급국민근로동원방책이라는 것을 발표한다.싸락눈을 맞으며 청년들의 입영이 무차별 시작되었다.그때 조국의 아들들을 사지로 떠나보내면서,한 조선인은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정의는 태양처럼,사악은 먹구름처럼,구름은 마침내 태양의 적수가 될 수 없습니다.정의자가 일어설 때는 그 승리는 명백한 것입니다…여러분,필승의 신념은 결코 헛된 맹신이 아닙니다.실로이와같은 필승의 이(理)를 자각하고,「대화일치( 大和一治),서로 굳세게 최후의 단계를 돌파하고 나아가야겠습니다.』 훗날 그는 대한민국 제헌국회 헌법기초위원이 되고,10년이 넘게 한국 명문사학의 총장을 역임한다.못난 민족이 스스로를 욕되게 함은 그렇게 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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