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민주당 기회는 ‘유능한 공익’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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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민주당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들은 2006년 지방선거→2007년 대선→2008년 총선 3년 연속 참패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어디로 가야 할까. 서성대며 두리번거리고 있습니다. 겉모습은 전성기 때 152석에서 81석으로 반토막이 났습니다.

더 큰 문제는 속병입니다. 정체성 분열증입니다. 김대중의 남북화해, 노무현의 진보개혁, 정동영의 가족행복, 손학규의 선진평화, 강금실의 ‘한 표 주세요’…

어느 것이 민주당의 인격입니까. 저마다 요소들이 잡탕으로 섞인 다중인격 정당 아닙니까. 다중인격은 인격의 일체성이 상실된 존재죠.

민주당은 이제 끝일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민주당엔 끈질긴 피가 흐릅니다. 김대중 야당 시절, 3당 합당의 위력에 눌려 새우등처럼 쪼그라졌을 때에도 민주당 세력은 죽지 않았습니다. 5년 뒤 보란 듯이 집권했죠. 이른바 10년 진보정권의 문을 연 겁니다.

민주당을 살린 힘은 김대중의 권력 의지와 정체성 재편이었습니다. 그때까지 민주당의 정체성은 호남과 민주화였습니다. 이걸 바꿨습니다. 호남을 호남+충청 지역연합으로, 민주화를 민주화+산업화 세력연합으로 전환하면서 민주당의 정체성은 재편됐습니다. 지금의 민주당도 정체성의 재편으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민주당의 기회가 있습니다.

민주당의 정체성은 존재감과 책임성을 느낄 수 있게 재편돼야 합니다. 다중인격 같은 분열적 느낌으로는 정치시장에 나올 수 없습니다. 인격은 이름입니다. 그래도 민주당은 이름 하나는 잘 지었습니다. 민주당의 풀네임이 통합민주당이기 때문이죠.

이름대로 분열된 정체성을 통합하는 일은 민주당의 운명이자 비전이 될 것입니다. 통합은 인간 내면의 분열성과 싸워나간다는 보편적 가치입니다. 매력적인 정치 브랜드이자 비전입니다. 그런데 통합은 말로 되지 않습니다. 거기엔 공식이 있습니다. ‘통합=공익+유능’입니다. 공익이 방향이라면 유능은 추진력입니다. 통합민주당은 ‘유능한 공익정당’이 되어야 비로소 명실상부, 이름과 실제가 일치하는 인격이 됩니다. 유능한 공익을 민주당의 정체성으로 삼아 보시죠.

그동안 민주당은 무능의 정치를 해 왔죠. 말로만 공익을 얘기했죠. 행동에 책임성이 없었습니다. 신념 과잉에 책임 부족이었습니다. 그들이 3년 연속 참패한 건 좌우의 문제라기보다는 신뢰의 문제였습니다. 민주당의 ‘말로만 공익’에 넌더리를 낸 사람들은 ‘주머니 속 사익’을 채워줄 것 같은 이명박의 한나라당한테 갔지요. 민주당은 관념의 정치, 기껏해야 신념의 정치를 했을 뿐입니다. 노무현이 열린우리당+한나라당 통합론을 폈던 거 기억하십니까. 얼마나 비현실적인 주장이었습니까. 이제 민주당은 신념의 정치에서 책임의 정치로 이동하셔요. 무능에서 유능으로, 사익에서 공익으로 전환하셔요.

박정희는 민주당이 ‘유능한 공익’ 인격을 갖추는 데 좋은 재료가 될 겁니다. 그는 공익을 추구했습니다. 이익이 나지 않아 기업이 할 순 없지만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할 공익 인프라를 박정희는 추진했습니다. 경부고속도로·포항제철 같은 거지요. 이게 국가의 일입니다. 박정희의 이런 측면은 지금의 민주당이 받아들일 만한 정신입니다. 민주당은 정부의 역할을 중시하는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시장의 역할을 중시하는 이명박 정부와 다릅니다.

현 정권은 비즈니스 프렌들리하다가 공익을 놓칠 수 있습니다. 그게 지금 정부의 예상되는 허점입니다. 그 허점을 파고드는 게 박정희식 정부 역할론입니다. 지금 시대 공익 인프라는 대규모 기초과학 투자 같은 겁니다. 미국의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인 버락 오바마도 공화당 출신인 링컨 대통령에서 공익 인프라 정신을 받아들였습니다. ‘공익 정치’는 오바마를 매력적인 국민 지도자로 부상시킨 그의 정체성이랍니다. 한국의 통합민주당도 한번 배워 보시죠.

전영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