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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대통령 직무정지] '공무원 중립' 정면 훼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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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과 직원 43명이 19일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시국선언을 해 파문이 일고 있다. 위원회 소속 직원들이 서울 종로구 이마빌딩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소속 공무원들이 국회의 대통령 탄핵 결의를 정면으로 비난하는 시국 성명서를 발표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총선을 앞두고 공무원의 정치 중립과 공직기강이 강조되는 시점에 국가공무원법상의 공무원 집단행동과 정치행동 금지 규정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단체행동에 나섰다. 성명을 주도한 김희수 상임위원(1급)은 "처벌과 불이익까지 감내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탄핵 결의 다음날인 지난 13일 시국 성명을 발표하기로 합의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행정자치부.검찰.경찰 등에서 파견된 공무원들은 '코드'가 맞지 않아 제외했다. 19일 오전 선언문을 발표하기 직전에는 한상범 위원장에게 자신들의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시국 선언이 몰고 올 파장을 예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경하게 나온 것은 이들의 정치적 성향 때문이다. 서명에 동참한 직원들은 대부분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나 시민단체 출신이다.

이들은 대통령 탄핵안 가결이 '부패.보수 정치권의 의회 쿠데타'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물갈이 심판에 직면한 부패한 수구 부패 정치배들이 본색을 드러낸 것" "탄핵 폭거는 민주주의와 과거사 청산 작업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는 등 거친 표현을 사용한 것에서 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또 "대통령 소속 기관인 의문사위가 대통령이 없는 상황에서 진상 규명 작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의문사위 활동에 부정적인 국회에 대한 불만도 시국 선언이 나오는 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의문사위의 처벌 권한 강화, 조사 범위 확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의문사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으나 소관 상임위를 정하지도 못한 채 무산됐다.

권한이 강화되기는커녕 수구 세력의 끊임없는 견제와 국정원.경찰 등 관련 기관의 비협조로 의문사 조사 활동에 제약이 많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지난해 7월 활동을 시작한 2기 의문사위는 오는 6월 법에 의해 조사 활동이 끝난다. 계약직인 전문위원들이 '계약 해지' 등의 중징계를 무릅쓰고 성명서를 낸 배경에는 이처럼 몇달 뒤면 민간인으로 돌아간다는 점도 한몫 한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에 대해 "공무원 신분으로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민주당은 해당 직원들에 대한 파면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안상정 부대변인은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라며 "의문사위는 불법적 시국 선언에 앞서 대우건설 남상국 전 사장의 투신 자살을 불러온 노무현 대통령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한 유감 표명부터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영창 부대변인도 "공무원법 위반이며 공직사회의 혼란을 조장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金부대변인은 이어 "어떠한 이유로도 공무원들의 시국 선언은 용납될 수 없다"며 "해당 직원들을 즉각 파면해 공무원 기강의 엄정함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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