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20명 중 14명이 1급 장애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그는 37세였다. 병원에서 눈을 떠보니 가슴 아래로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외항선을 타고 푸른 바다를 누비던 마도로스 생활은 그렇게 끝이 났다.

현재 열네 명의 1급 장애인과 함께 일하고 있는 곰두리렌터카의 조익래(56·사진) 대표가 장애인이 된 사연이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 같더라고요. 어떻게 살아야하나 막막하기도 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술에 취해 방황했죠.”

세 자녀를 잘 키울 생각으로 넘치던 의욕이 한 순간에 꺾였다. 그렇게 시간과 싸우기를 2년. 우연한 기회에 부산시가 중증장애인을 위해 마련한 나들이에 참석한 그는 새로운 결심을 했다.

“나보다 더 심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열심히 사는데 눈과 귀, 팔과 머리가 온전한 나는 뭐든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움츠려 있던 그가 세상으로 나와 처음 택한 것은 택시 운전. 운전은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을 위한 좋은 생계 수단이었다. 하지만 당시 장애인에게는 1종 면허가 금지돼 있었다. 그는 포기하는 대신 싸우기로 했다 . ‘장애인의 1종 운전면허권 쟁취를 위한 대국민 운동’을 시작했고 100만 명 이상의 서명을 받았다. 정부와 경찰청을 끈질기게 설득한 결과 1994년 장애인도 1종 운전면허를 딸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꿀 수 있었다.

“장애인은 당연히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죠. 하지만, 이겨내야죠. 현실을 인정하고 세상으로 나가니 길이 보이더군요.“

자신감이 생기자 장애가 더는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보험 회사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한 그는 3년 연속 전국 최우수상을 받았다. 보험이 필요하지만 정보가 없어 혜택을 받지 못한 장애인이 주고객이었다.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자 2000년에는 렌터카 사업을 시작했다.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들을 고용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업종을 택한 가장 큰 이유였다. 현재 직원 20명 중 14명이 하반신마비 1급 장애인이다. 그동안 100여 명의 장애인이 이 회사를 거쳐갔다.

그에게 장애인 고용은 그야말로 ‘존재의 이유’다. 장애를 가진 직원들을 위한 샤워실·수면실 등 편의시설을 회사 곳곳에 마련했다.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배려다. 조 대표는 28회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장애인 고용에 앞장선 공로로 대통령이 수여하는 ‘올해의 장애극복상’을 받았다.

“장애인에게는 일자리를 주는 게 가장 큰 복지죠. 정부는 지원책을 늘리고 비장애인은 편견을 버리고 장애인을 동료로 받아 들여주면 좋겠습니다.”

글=김은하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