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헌재, 탄핵 審理 조용하고 신속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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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헌법재판소가 어제 전체 재판관들의 평의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사건의 첫 변론을 오는 30일 열기로 했다. 헌재는 첫 변론에서 盧대통령과 소추위원인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불러 양측 의견을 듣겠다는 계획이어서 盧대통령의 출석 여부를 포함해 심리 초반부터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이후 우리 사회는 곳곳에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찬.반 집회가 끊이질 않고, 서로가 네 탓이라며 상대를 향해 독설을 퍼붓고 있으니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은 불안하고 걱정스러울 뿐이다. 이런 갈등이 장기화한다면 엄청난 국가적 불행으로 연결될 수 있다. 헌재가 어떤 결론을 내려도 한 쪽에선 쉽게 승복하려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해선 헌재가 심리를 서둘러야 한다. 그런 점에서 헌재가 이 사건 심리를 가급적 신속히 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은 잘한 일이다.

이번 사건 심리에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쏠려 있다. 그만큼 헌재 재판관들의 심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런 마당에 세를 과시하기 위한 찬.반 집회가 꼬리를 문다면 공정한 심리를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헌재 재판관들이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판단하려면 무엇보다 조용한 가운데서 심리할 수 있는 분위기 보장이 중요하다.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과격 시위나 막가파식 의견 표출의 자제가 필요한 까닭이다.

이제는 탄핵 찬성파든 반대파든 헌재 결정에 승복하겠다는 다짐이 필요하다. 헌재 결정이 내려진 뒤에도 찬.반으로 갈리어 서로 반목한다면 이 나라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2000년 대선 당시 플로리다주의 재검표를 둘러싸고 계층.지역.인종 등으로 분열됐던 미국인들이 연방대법원의 결정에 깨끗이 승복함으로써 갈등을 봉합했던 게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헌재는 이 사건 결론을 최대한 빨리 내려야 한다. 아울러 불필요한 오해가 없도록 심리(審理)에 장애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그 과정을 공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