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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세상보기>한여름밤의 惡夢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어젯밤 꿈속에서 매스컴 입사시험을 치렀다.두꺼운 안경을 쓰고얼굴이 퉁퉁한 논설위원이 면접에서 시사문제를 물어 보는데 무척까다로웠다.
『삼풍대참사로 결국 몇명이 죽고 몇명이 실종됐습니까.』 『그러니까 그것이 사망.실종 합쳐 처음에는 6백명이 넘는다고 하다가 실종자가 갑자기 두배로 늘어났다가 다시 줄고,확인할 수 없는 시신이….』 『그래 가지고 대참사의 교훈을 잊지 말자는 기사를 쓰겠습니까.시 아펙스號.시 프린스號.삼선 비너스號는 지금어디서 무얼 하고 있습니까.』 『시 아펙스號는 인공기를 내렸고,시 프린스號는 기름을 덜었고,삼선 비너스號는 무사히 돌아왔습니다만….』 『얼렁뚱땅하는 재주는 있구먼.다음,4천억원 비자금은 있나요,없나요.』 『검찰 수사로는 없지만 신문에 따라서는 있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그러나 아무리 정치자금을긁어모았어도 그렇게 많이는….』 『그러면 1천억원 카지노 계좌는?』 『감히 쫄따구 업자가 무슨 그리 큰돈을….』 진땀을 흘리며 간신히 대답했는데 그 다음 질문은 정말 난해했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정치자금 스캔들 폭로가 불과 열흘 사이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끝나고,그런 소동이 아무렇지도 않게넘어가는 사회를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사회라고 불러도 하등 아무런 심리적 부담감을 안느낀다고 할 때 당신은 어떤 반론을 제기하겠습니까.』 『광복 50년동안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45세에서 71세로 57%나 늘었는데,한국인 최초의 독자(獨自)위성은탄생하자마자 수명이 50%나 준 원인을 과학적.기술적 관점이 아니고 사회 심리학적 관점에서 설명하시오.』 『아주 쉬운 것을묻지요.3金시대는 끝나야 하오,더 가야 하오.민자당은 물갈이를한거요,안한거요.半년안에 정당이 몇개로 늘어날 것 같소.』 아무리 매스컴 지망생에 대한 질문이라지만 이렇게 어려운 시사문제를 묻다니! 진땀을 흘리다가 소리를 버럭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신문이 속보(續報)를 써야 알지요.』 □ 열대야(熱帶夜)는 정말 덥다.다시 잠이 들었다.또 꿈을 꿨다.잠실 메인스타디움 같은 광장에서 무슨 축제가 열리는데 지붕위로 형형색색의 탈들이 불쑥 솟아 오르더니 일제히 꼭두각시 춤 박자에 맞춰 몸을 흔들어 댄다.새로 태어난 정당의 탈들인데 당가(黨歌)와 강령을 소개하고 있다.면접시험의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동고향당(東故鄕黨)은 당가를 「신라의 달밤」으로 정했다.서(西)고향당은 「목포의 눈물」,중(中)고향당은 「대전 블루스」가당가라고 했다.동고향남(南)당과 서고향북(北)당은 아무것도 못정했다고 한다.오합(烏合)당과 지졸(之卒)당은 태동하면서부터 서로를 손가락질하고 있다.
제일 흉칙한 몰골을 한 5공당은 당원들에게 진압봉(鎭壓棒)휴대를,6공당은 집 지을 때 바닷모래 사용을 각각 의무화했다고 당 강령을 소개했다.
가장 늠름한 산악당(山岳黨)은 대도무문(大道無門)을 좌우명으로 삼는다며 자신들을 홍길동이나 로빈 후드에 비유했다.그러나 너무 목청을 높인 나머지 무슨 소린지 알아 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르는 것이 유감스러웠다.「개핵」과「밴하」라는 말이 들리는것 같았다.이들 탈은 있는 힘을 다해 악을 썼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살려면 흩어져라!』 신문은 많아도 미스터리만 쌓인다.온갖 탈바가지들이 금언(金言)을 뒤집는다.아,잠못 이루는 나에게 밤은 길구나.아제 아제 바라 아제.
〈수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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