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친구와 동행6년 … 고교 진학도 같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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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는 6년째 휠체어를 탄 재현이의 하굣길 동반자다. 주호는 “생각 깊은 재현이가 듬직해서 좋다”고 말했다. [사진=송의호 기자]

“친구 힘든 걸 좀 도와 줄 뿐입니다. 도움은 오히려 제가 더 많이 받습니다. 고민을 털어 놓으면 신기하게도 마음 편해지는 말을 해 줘요.”

대구전자공고 2학년 오주호(17·대구 달서구 월성동)군은 15일 하굣길에 단짝인 박재현(17)군의 휠체어를 살피면서 “놀랄 정도로 생각이 깊은 친구”라고 소개했다.

재현이는 몸속 근육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희귀 질환인 근이영양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혼자서는 일어나고 앉는 것조차 어려워 휠체어에 의지하는 중증 장애다. 척추뼈가 휘어 땅을 보기도 힘들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병명을 알았다.

체구가 건장한 주호는 6학년 때 학산초등학교로 전학 온 재현이를 처음 만났다. 사는 아파트도 바로 옆동이어서 둘은 금새 친해졌다. 그때부터 주호는 매일 하교할 때 휠체어를 탄 재현이 옆을 나란히 걸으며 말동무가 됐다. 휠체어를 오르내리는 것도 도왔다. 중학교도 대건중으로 같이 진학해 3년간 우정을 쌓았다. 둘 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임대아파트에 산다.

중3, 고등학교를 선택할 때가 됐다. 둘은 얘기 끝에 실업계인 대구전자공고에 가기로 뜻을 모았다.

“인문계에 갈 성적이 안됐어요. 그렇지만 서로 친구가 필요했습니다. 집에서 가깝기도 하고….”

입학하자 주호는 학교 생활에서 몸이 불편한 재현이를 돕기 위해 같은 반이 되었다. 주호는 이제 눈짓만 봐도 재현이가 뭘 필요로 하는 지 안다. 주말이면 같이 컴퓨터 게임도 하고 학교서 배운 과목을 공부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재현이가 주호의 도움을 받기만 하지는 않는다. 몸이 불편한 재현이는 자신있는 국어 과목이나 컴퓨터를 주호에게 가르쳐 준다. 또 주호가 걱정스런 이야기를 할 때면 자기 생각을 말하며 안심시킨다. 주호는 “재현이가 힘든 일을 많이 겪은 때문인지 생각의 차원이 다르고 배려할 줄 안다”고 고마워했다.

올해 2학년이 되면서 둘은 반이 갈렸다. 이제는 재현이와 같은 반인 조욱빈(17)군 등 반 친구들이 재현이의 급식과 이동을 돕고 있다. 그래도 하굣길엔 주호와 재현이가 변함없이 동행한다.

재현이 어머니 오복환(52)씨는 “주호는 재현이를 절대 장애인으로 보지 않는다”며 “주호가 곁에 있어 큰 위로가 되는 것같다”고 말했다.

재현이 반 김이경(39·전자) 담임교사는 “재현이가 학업 열성이 높고 무엇보다 생각이 깊어 이따금씩 놀란다”며 “아이들의 편견없는 우정에 우리가 도리어 배운다”고 말했다.

재현이의 꿈은 ‘금융자산관리사’다. 그래서 경제학과를 들어가는 게 목표다. 틈날 때마다 관련 책을 보고 인터넷을 검색한다. 또 실전 감각을 익히기 위해 직접 주식 5주를 투자하고 있다. 1만6600원에 산 CJ인터넷 주식이 지금은 1만5700원이라는 것.

주호는 운동을 좋아하고 정의감이 남다르다. 그는 고등학교를 마치면 바로 취업할 생각이다. 희망은 여전히 남을 위해 사는 경호원이나 사회복지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는 길이 달라도 자주 만날 겁니다. 친구니까요.”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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