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한민족축전 두차례 참가 在불가리아 최동준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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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한국에 두번째 왔지만 그때마다 놀랍니다.발전속도가 느껴질 정도로 성장하는 것같아요.이역만리에 살고 있지만 한국인이란 점에서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95세계한민족축전」 참가를 위해 불가리아에서 온 최동준(崔東俊.60)씨.한민족축전에는 두번참가를 금하고 있지만 이민수기에서 우수상을 받아 91년에 이어이번에 이례적으로 두번째 축전에 참가하게 됐다.
불가리아에서 광산기사로 일하고 있는 그는 수수한 모습의 초로의 신사모습이지만 그에게는 사연이 많다.
함흥출신의 그가 불가리아에 유학했을때는 56년 19세때.함흥고등중학교를 졸업한 뒤 국비장학생으로 뽑혀 불가리아 소피아大 광산지질대학 수문지질공학부에서 수학했다.
그가 한창 공부에 열중하던 62년에 북한당국은 그에게 귀국령을 내렸다.유학생들의 사상재무장을 위해서였다.그는 무척이나 고민해야 했다.같은 공산주의국가였지만 불가리아는 북한보다 비교적자유스러웠기 때문이었다.북한의 1인독재가 특히 싫었다.또 다른이유도 있었다.그는 당시 불가리아여인과 사랑에 빠져 있었다.농학을 전공하던 부인 게오르기 에바(55)였다.결국 그는 유학동기 최동성.이장직.이상종씨와 함께 불가리아에 망명을 요청했다.
젤류젤레프 불가리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이 이때다.동기 최동성이 젤류젤레프대통령과 절친한 친구였기 때문이다.그들의 망명과정은 한마디로 드라마다.
불가리아에서는 망명을 허락했지만 북한대사관은 그들을 2개월간억류했다.북한대사관 직원들이 북한으로 강제로 데려가려할때 그들은 여권을 두고 모두 도망쳤다.
불가리아에서는 이례적으로 그들을 보호해주었다.불가리아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있던 그는 이제『진정한 고향을 찾았다』며 환하게 웃었다.
〈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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