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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문화유산을찾아서>24.금동제 투각冠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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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나는 역사학이나 고고학에 대해 일개 문외한에 불과하지만 내취미나 기호가 이끌리는대로 모은 것이 이 물건들이다.더욱이 일본고대사 가운데 조선의 발굴품이나 고미술품을 근거로 하지 않으면 밝혀지지 않는 부분이 의외로 많은 점에 놀라 고 난 뒤부터체계적인 수집계획을 세웠는데 구태여 고미술품이라고 할 수 없는조선의 고기고물(古器古物)을 될 수 있는대로 계통적으로 모으는일이 일본 고대사를 확실하게 밝히는 일이며 극동 퉁구스족문화의연구에 공헌하는 일이라고 생각 했다.수십년에 걸쳐 수집에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말은 일본의 골동수집가였던 오쿠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1870~1982년)가 64년 『오쿠라컬렉션목록』을 발간하면서 남의 나라 문화재.미술품을 마구잡이로 수집한데 대한 자기변명을 겸해 밝힌 컬렉션동기와 내력이다.
오쿠라는 해방전 우리땅에서 탐욕스럽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그악하게 한국의 골동.고미술품을 수집했던 일본인 수집가중 한사람이다. 그의 컬렉션은 우리나라가 일본에 문화재반환을 요구할 때공공단체외에 개인수장가로 그의 이름을 특별히 거론했을 정도로 질과 양에서 엄청난 규모였다.특히 골동부분,말하자면 그 자신이밝힌 것처럼 고대사의 자료가 될만한 고분(古墳)출토 품이 압도적으로 많은게 특징이다.
그의 컬렉션을 대표하는 것중 하나가 금동제 투각관모(金銅製 透刻冠帽)다.현재 이 물건은 도쿄(東京)국립박물관에 기증돼 동양관 한국실의 한가운데 전시중이다.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돼있는이 금관은 경남 창녕에서 출토됐다고만 할뿐 자세 한 출토위치는알려져 있지 않다.이 금관은 더욱이 우리가 늘 보아온 신라금관,즉 出자모양으로 황금가지가 뻗어있고 그 사이사이에 수식이 주렁주렁 달린 금관과는 형태를 달리하지만 가야(伽倻)시대에도 이토록 화려한 문화가 존재했음을 말해 주는 대표작임에는 틀림없다. 금관은 『골동 수집의 맨마지막』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골동수집가들에겐 최고의 선망 대상이다.오쿠라의 수집품에는 이같은 금관이 무려 10여점 가까이 포함돼있어 그의 컬렉션의 수준과 실력을 말해주고 있다.
오쿠라가 해방직전까지 한국에서 가진 직함은 대구 조선합동전기주식회사 사장이었다.지금은 나리타(成田)市가 된 지바(千葉)縣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도쿄제국大를 졸업하고 1903년일찌감치 큰 야심을 품고 한반도로 건너왔다.한때 조선경부철도(朝鮮京釜鐵道)주식회사에 몸담았으나 그후 1911년 자립하면서 대구에서 전기회사를 설립하고 사장이 됐다.이 회사는 나중에 조선합동전기주식회사로 커졌는데 해방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가장 큰 전기회사였다.
그의 골동수집은 20년대부터 시작돼 해방직전까지 거의 25년간 계속됐다.그가 골동수집에 착수한 20년대는 특히 낙동강하류의 창녕.함안.김해등 옛 가야지방 고분과 경북 선산지역의 고분들이 집중적으로 도굴당했던 시기였다.
오쿠라는 대구에 들어앉아 막대한 금력으로 이들 도굴품의 이동을 지켜보면서 귀중한 것,중요한 것을 엄청나게 수집했다고 전한다. 그가 탐욕스럽게 모은 컬렉션은 해방이 되면서 둘로 나뉘었다. 상당량은 그가 밀선을 이용해 일본으로 가져갔고 나머지는 훗날을 기약하며 대구 일대 여러곳에 파묻어 놓고 간 것이다.
대구에 파묻어 놓고 간 오쿠라의 컬렉션은 우연치 않게 드러나거나 혹은 일부러 노리는 사람들의 표적이 되면서 여러차례 신문에 오르내리기까지 했다.
한가지만 소개하면 64년5월 대구의 어느 군부대 관사(官舍)에서 집수리공사할 때 마루밑에서 전기공사를 하던 전기공이 고려청자.조선백자.청동기등 1백40여점의 도자기골동과 고미술품을 발견하고 눈이 휘둥그레진 일이 있었다.이 사람이 발견한 것은 오쿠라가 파묻어 놓은 골동중 일부였다.이 집은 원래 오쿠라가 예전에 살던 곳이다.
한편 오쿠라가 일본으로 가져간 골동.고미술품은 전후 일부가 처분됐으나 주요내용품은 58년 그가 세운 재단법인 오쿠라컬렉션보존회로 옮겨져 보관됐다.
68년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동양관이 개관되면서 그의 컬렉션일부가 이곳에 대여.전시됐다.그후 81년 오쿠라컬렉션보존회가 가졌던 1천1백10점 모두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됐다.
기증된 오쿠라컬렉션 가운데 한국물건은 고고유물 5백57점,조각 49점,금공예품 1백28점,도자기 1백30점,칠공예품 44점,서예작품 26점,회화 69점,염직물 25점등이다.
이미 여러차례 오쿠라컬렉션을 살펴보았던 정양모(鄭良謨)관장은『오쿠라컬렉션의 수준은 매우 높다』며 『특히 창녕등 가야지역에서 출토된 고분미술품은 대단한 수준』이라고 평했다.
***창녕유물 名品만 컬렉션 鄭관장은 『이 금동관은 그 가운데서도 백미(白眉)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격자무늬를 투각으로 새긴 관모의 몸체위에 길다랗게 새 깃털같은 장식을 달아 화려함과 권위를 나타냈다.
또 몸체의 격자가 마주치는 곳마다 걸으면 찰랑찰랑 소리를 내는 보요(步搖)라는 장식금판이 붙어있다.
도쿄국립박물관의 사오토메(早乙女雅博)동북아시아실장은 『최근 동양관의 개축 공사 때 이 작품도 손보았는데 4개월 걸려 때와녹을 벗겨냈다』고 말했다.
죽은 자의 권위와 내세의 영광을 위해 찬란한 황금색으로 치장된 이 금동관은 이 곳을 찾는 일본인들은 물론 외국 관광객들의발걸음까지 멈추게 하며 한참동안이나 한국 문화의 깊이와 수준에빠져들게 하는 도쿄국립박물관의 자랑거리인 명품 이 되고 있다.
▧ 다음회는 고려시대 金泥寫經 大寶積經입니다.
글 :尹哲圭기자 사진:崔正東기자.도쿄국립박물관제공 자문위원:鄭良謨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安輝濬 서울대박물관 관장 洪潤植 동국대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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