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아프간 재파병’ 해법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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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첫 미국 방문을 앞두고 아프가니스탄 재파병 문제가 한·미 간 현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정하지 못했지만 18일로 예정된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에서 미국 측이 명시적으로 재파병을 요청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1월 워싱턴을 방문한 정몽준 대통령 당선인 특사에게 “아프가니스탄 군과 경찰에 대한 훈련요원을 파견해 달라”며 사실상의 파병을 요청해 왔다.

3월 미국에 간 유명환 외교부 장관도 비슷한 내용의 요청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 지명자도 9일 상원 외교위 청문회에서 파병 문제와 관련한 질의를 받고 “한국이 어떤 방식으로 기여할지 이 대통령의 방미에서 이런 문제들이 다뤄질 것으로 본다”고 답변했다.

정부는 당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다산(건설지원단)·동의(의료지원단) 부대 190명을 지난해 12월 모두 철수시킨 지 4개월 만에 재파병 문제가 부각되면서 섣불리 입장을 정하기 어려운 상태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전부터 한·미 동맹의 복원을 외교안보 정책의 최우선 과제에 두고 있음을 여러 차례 공개 표명했다. 대테러 전쟁 등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를 강화한다는 이런 기조에 비춰볼 때에도 정상회담에서 요청해 올 경우 비켜 나가기 힘든 측면이 있다.

이라크와 달리 최근 아프가니스탄 주둔 군대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고려사항이다. 현재 미군과 제3국 군대를 포함한 파병 규모는 2년 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병력을 철수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는 정부 소식통의 말은 이 같은 국제적 상황을 감안한 고민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재파병에 대한 국민 여론이 가장 큰 부담이다. 더구나 현지 치안이 이라크보다도 더 불안해 파병에 뒤따르는 위험이 매우 높다. 정부 관계자는 “지난해 43일간에 걸친 인질사태로 인해 국민의 정서적 거부감은 더 높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탈레반 무장세력은 ‘한국군의 철수’를 석방조건으로 내걸었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에 재파병하게 될 경우엔 전투부대를 보내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국회 동의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아프가니스탄 파병은 이라크에 파병해 있는 자이툰 부대와 달리 주둔 여건이 더 위험하다. 자이툰 부대는 이라크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아르빌에 단독 주둔해 있다. 한국군이 현지에서 독자적으로 머물고 있는 만큼 미군을 겨냥한 각종 테러에서 더 자유롭다.

반면 아프가니스탄에선 한국군이 미군과 함께 주둔하며 움직여야 한다. 지난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 철수했던 다산·동의 부대는 미군이 관할했던 동맹군 주둔지인 바그람 기지의 한쪽을 사용했다. 지난해 2월 동의부대의 한 병사가 당시 바그람 기지를 극비 방문 중이던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을 노린 이슬람 테러 조직의 폭탄테러에 희생된 적도 있다.

당장 군 당국은 난색을 보인다. 군에서는 미국이 요청한 군·경 훈련요원을 수십 명 수준의 교관으로 구성되는 ‘군사고문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신변보호를 위해 경호병력을 파견해야 한다.

정부 일각에서는 “미국과 협의를 통해 민간 의료인력과 직업훈련요원 등 지방재건팀(PRT) 파견 인력을 증원하는 선에서 절충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란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이 파병 요청을 받더라도 가부간에 즉답을 하기 어렵다”며 “방미를 마치고 돌아온 뒤 광범위하게 여론을 수렴하고 관련 부처들 간에 면밀히 협의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영준·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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