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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만씨 출연해 3김 자녀와 맞붙을 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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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장학퀴즈’ 17년 진행한 차인태 아나운서

17년2개월간 ‘장학퀴즈’를 진행했던 차인태 경기대 교수가 800회 진행 기념패를 들어 보이고 있다.


한국 퀴즈 프로그램을 말할 때 ‘장학퀴즈’를 빼놓을 수 없다. 1973년 2월 18일 문화방송(MBC)에서 전파를 타기 시작해 97년 EBS로 채널을 옮긴 뒤 현재도 방송 중인 최장수 퀴즈 프로그램이다. 35년간 세부 포맷은 수도 없이 변했지만 고교생끼리 퀴즈 실력을 겨뤄 우승자에게 학자금을 지원하는 기본 컨셉트는 한결같다.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과 함께 일요일 아침을 열었던 ‘장학퀴즈’는 차인태(경기대 교수) 전 아나운서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초대 MC였던 차 아나는 90년 4월 22일 850회까지 17년2개월간 진행을 맡았다. 잊지 못할 인연이 수두룩한데, 그중 한 명이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 5월 평안도지사로 임명됐는데(차 아나의 고향은 평안북도 벽동), 이북 5도지사는 직제상 행자부 장관의 업무 감독을 받게 돼 있어요. 임명장을 받으러 가니 당시 김두관 장관이 문 앞에서 반기며 꾸뻑 인사를 하더라고요. 웬일인가 했더니 김 장관이 76년 남해종고 2학년 때 장학퀴즈에 출연했더라고요. 주장원까지 못 가고 탈락한 터라 제 기억엔 가물가물한데, 먼저 인사를 해 알게 됐지요.”

3기 기장원이었던 영화감독 이규형도 잊을 수 없다. “신일고 2학년이었는데, 좀 덜렁덜렁하고 집중력이 없다 싶었는데 대신 사고의 폭이 넓었어요. 첫 출연부터 기장원전까지 일관되게 장래 희망을 영화감독이라 하더군요. 대부분 의사·교수·기업인을 꿈꿀 때라 인상적이었죠.”

일반인의 TV 출연이 드물었던 시절, 고교생 출연자들은 녹화 전 잔뜩 긴장해 있었다. 긴장도 풀어주고 퀴즈 도중 개별 인터뷰에 쓸 겸 해서 차 아나는 녹화 전 그들과 일일이 면담했다. 850회 진행할 동안 그렇게 면담한 자료와 최종 성적을 적은 카드를 아직도 갖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가 출연할 뻔한 비화도 있다. “당시 중앙고를 다니고 있었는데, 출연을 타진해 왔어요. 대통령의 아들인 걸 고려해 예비시험은 면제해주고 출연시키려 했는데, 청와대 측에서 ‘TV에 나가 망신당해선 안 되니 결정적인 문제를 몇 개 알려 달라’고 했어요. 고민 끝에 동년배였던 김영삼·김대중 ·김종필씨의 자녀들까지 함께 붙여 진검승부를 해보자고 했더니 더 이상 압력이 들어오지 않았죠.”

전국의 내로라하는 수재들이 실력을 겨뤘던 ‘장학퀴즈’는 오늘날 인재 육성의 요람 구실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1회 주장원이었던 LIG 엔설팅 최승기 대표이사 대표를 비롯해 삼성생명 신흥철 전무, SK건설 임한규 상무, 클루닉스 권대석 사장, 서울중앙지방법원 하태헌 판사, 2003년 한 해에 박사학위 3개를 따 화제가 됐던 김병준 박사, 무협소설을 냈던 부산지검 임무영 부장, 김명식 변호사 등이 모두 장학퀴즈 출신이다. 전 SBS 앵커 한수진, PMC 대표 송승환, 방송인 이택림, 가수 김광진 등도 장학퀴즈를 거쳐갔다.

우수 학생이 많이 출연하고 35년째 장수하기까지 SK(옛 선경) 그룹의 공헌은 절대적이다. 370여 명에게 100억원의 학자금을 포함, 프로그램 안팎에 약 1000억원(현재 물가 환산 추정치)을 지원했다. SK는 인재경영이라는 기업문화를 중국에 접목한다는 전략으로 2000년부터 베이징TV를 통해 중국판 장학퀴즈 ‘SK 좡위안방(壯元榜)’을 방영하고 있다.

<글=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 사진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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