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기적의 삶과 장난감"에서뭘 배워야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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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캄캄한 암흑,죽음으로부터 11일만에 한 청년이 살아나왔다.절망속에서 상상밖의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난 청년,우리는 그를 보고 모두들 기적이라 했다.그런데 무엇이 그로 하여금 죽음을 이겨내게 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젊음을 들먹였다.낙천적인 성격을 강조했고효심이 가득한 착한 청년이었음도 잊지 않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아무도 장난감 기차에는 주목하지 않은 듯하다.그 청년은 무너진 시멘트더미 속에서 우연히 장난감 기차를 하나 발견했고,종종 그 기차를 갖고 놀았다고 했다.나는 말없는 이 장난감이야 말로 이 청년이 절망 속에서 삶을 버틸 수 있게 큰 도움을 준 것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이 청년은 장난감 기차를 굴리면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고,기차를 향해 말없는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으리라.그의 처절한 외로움을 이 기차는 나눠 가졌을 것이고,손안에 있는 구체적인 사 물은 그로 하여금 엉뚱한생각이 덜 들도록 도와 주었으리라.
나는 그 청년이 장난감 기차를 갖고 놀았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다시한번 우리 인간에게 얼마나 놀이가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청년이 구조된 이틀후,또 다른 생존자를 발견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18세의 처녀였다.그런데 그 처녀는 물 한모금도 먹을 수 없었고,칠흑같이 캄캄하고 조그마한 공간속에서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고 했다.그 소식을 듣자 장난감이 며칠전 살아나온 청년의 생존에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는 나의 심리학적 생각이 이번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러나 다음날 텔레비전 뉴스시간에 그 이론이 억지가 아니라는증거를 잡게 되었다.처녀를 문병 온 한 구조대원(?)이 한쪽 손에는 장난감 기차를 들고 있었으며,또 다른 손에는 유리를 자르는 칼이라고 하면서 마치 구두 틀잡이같이 생긴 물건을 들고 나와서 처녀에게 보여주었다.갇힌 지하 속에서 이것을 갖고 놀았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하면서.처녀는 웃는 모습으로 수긍의 대답을 했다.16일만에 구조된 다른 처녀도 마네킹을 만지며 지냈다고 한다.
인간에게 놀이는 중요하다.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놀이란 삶의 일부다.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삶을 연습하고,놀이를 통해 현실에서는 쉽사리 성취될 수 없는 꿈도 꾸고,억눌린 감정을 발산해 보기도 한다.놀이는 시간의 낭비가 아니다.놀이 속에서 아이들은 많은 것을 배운다.
그런데 우리의 아이들은 요즈음 놀 시간이 없다.국민학교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학습지를 풀어야 한다,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하여.피아노도 배우고 미술도 배워야 한다,다른 아이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하여….
아이들은 천천히 자기 수준에 맞는 놀이를 하면서 세상을 탐색하고 상상력을 기르면서 자라야 한다.서두르지 말고 하나 하나를이해하면서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나서 자신의 속도에 맞춰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그런데 요즈음 아이들은 한 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해야 하기 때문에 소화시킬 겨를마저 없다.
빨리 빨리 많은 것을 이루려고 했던 우리네의 욕심이 삼풍백화점의 참사를 가져왔지만,빨리 빨리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려고 하는 어른들은 기반이 든든하지 못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설마 백화점이 무너지기야 하겠느냐고 했겠지만 우리에게는 엄청난 현실이었다.만일 아이들이 이렇게 무너져 버린다면 어떻게 할까.제발 어른들은 아이들이 어려서만은 신바람이 나도록 놀 수 있게 해줘야 한다.놀이가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고 놀이를 통해서 아이들은 독창적인 생각을 해낼 수있다는 사실을 어른들은 알아야 한다.기적의 삶에 장난감 기차가한 몫 했다는 것을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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