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高麗를 보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르네상스 시대 역사 연구자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요한 호이징가는 중세를 가장 아름답게 묘사한 학자이기도 했다.그의 명저『중세(中世)의 가을』은 교회에서 은은히 들리는 저녁 종소리,봉건 영주(領主)의 휘장과 문장,중세 기사도와 그들 의 갑옷,심지어 말 안장 장식까지를 외경(畏敬)의 염(念)으로 칭찬하고 있다.르네상스문화란 중세문화와의 단절이 아닌 연장과 변용(變容)이라고 그는 보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의 중세는 고려시대다.통일신라시대나 조선시대 연구는활발한데 고려시대 연구는 지지부진한게 우리 역사학계의 현실이다.이러니 일반인에게 있어 고려는 무신(武臣)정권과 몽고의 침입이라는 황폐한 인식밖에 남는 게 없다.우리의 중 세는 함몰된 역사로,잃어버린 시대로 존재할 뿐이다.
잃어버린 우리의 중세,고려를 한눈에 재생시켜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호암갤러리에서 전시중인「대고려 국보전」을 보면서 우리 역사 속에서 가장 화려했고 가장 탁월했던 12,13세기 중세의 가을,르네상스 문화가 이것이구나 하는 새로운 감탄을 저절로 하게 된다.단순한 고미술품 전시회가 아니다.지금껏 청자 따로,불화(佛畵)따로,금속공예 따로 제각각 열린 전시여서 고려문화의 집대성을 이룬 적이 없었다.
대고려 국보전에는 불화.불상.나전칠기.금속공예가 한자리에 모여 있어 잃어버린 고려문화를 복원하고 재생하는 마법을 걸어 준다.타임 머신을 타고 우리의 중세를 여행하는 기분이다.
1백년에 걸친 무신정권과 80년에 걸친 몽고의 내정간섭 속에서 어떻게 이토록 화려하고 정교한 예술공예와 불교문화가 빛났는가 하는 의아심도 떨칠 수 없다.군사정권의 압제와 외적과의 전란을 불심(佛心)으로 극복하는 제작자들의 신앙심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오묘 불가사의한 신비의 예술품이다.
전시작품 중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이 나전칠기다.공예기술의 우수성과 현대적인 담대한 채색은 보는 이로 하여금 새삼 고려문화의 우수성을 생각하게 한다.이 나전칠기가 국내에 오직 한점밖에 없다는 사실도 가슴 아픈 일이다.
잃어버린 위대한 우리 문화유산을 찾아 망각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고 복원하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대고려 국보전은 미술 전시의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