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킹 목사 사망 40주년 … 피살 현장을 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미국 남부 테네시주의 멤피스. 흑인 역사의 비극과 좌절이 담겨 있다. 그곳에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암살 현장이 남아 있다. 로라인(Lorraine) 모텔이다. 그의 피살은 4일로 40주년(당시 39세)이다. 그해 1968년은 미국 역사에서 독특한 혼란기였다. 반전, 사회 저항, 문화 해체의 열병을 앓았다. 흑인인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미국의 제2 건국으로 표현한 민권운동(civil right)의 시기도 60년대다. 킹은 비전과 열정으로 민권 시대를 이끌었다.

지난달 가 본 모텔은 작고 허름했다. 킹은 흑인 청소원 파업을 지원하려고 멤피스를 찾았다. 대중 모텔 숙박은 민권 운동의 고단한 처지를 보여준다. 그곳은 국립 민권박물관으로 바뀌었다. 건물 외형은 그대로 둔 채 내부를 개조했다. 킹은 2층 306호실 발코니에 있다가 총에 맞았다. 발코니 난간에 걸린 조화는 총 맞은 곳을 표시한다. 주차장에 킹 일행의 흰색 캐딜락 등 승용차 2대가 남아있다. 역사 현장을 치장 없이 보여준다. 성경 구절을 담은 소박한 대리석 추도문도 있다. “꿈꾸는 자가 온다. 그를 죽여 버리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자”(창세기 37장 19~20절). 저주와 비아냥의 글귀는 “나에게 꿈이 있다”는 킹의 감동적인 연설(63년 링컨기념관)을 기억나게 한다.

킹의 꿈은 흑백 분리 철폐였다. 첫 꿈은 흑인도 버스에서 원하는 자리에 앉을 권리였다.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꿈을 실현한 과정(55년, 버스 탑승 거부 381일)은 40주년 특별 전시물이다. 흑인은 뒷좌석에 앉아야 하는 격리 버스가 복원돼 있다. 상황 재현물은 어이없는 흑인 차별, 그들의 분노와 절망을 실감시킨다. 이제 그 꿈은 흑인 대통령 탄생의 가능성까지 진화했다.

저격 장소는 2차선 도로 건너편 하숙집. 암살범 제임스 얼 레이가 묵은 그곳도 보존돼 있다. 망원렌즈를 얹은 구경 30.06㎜ 레밍턴 저격용 소총이 관람객의 시선을 잡는다. 자원봉사 안내원은 “총구에 흑인 멸시와 증오의 악령이 남은 듯하다”고 말한다. 피살 진상은 아직 미스터리다. 단독범행이 아닌 FBI 개입 의혹 등 여러 음모론이 소개돼 있다.

암살 40주기는 다양하게 조명되고 있다. 민주당 대선 주자 버락 오바마 때문이다. 오바마가 정면에서 도발적으로 제기한 인종 문제는 대선의 주요 이슈가 됐다. 오바마 유세장에서 킹은 등장한다. 변화와 통합을 내건 오바마의 메시지는 킹을 언급하는 순간 강렬해진다. 반복과 단문으로 청중의 열망과 상상력을 장악하는 킹의 연설 기법은 오바마를 통해 재현된다.

전시실은 민권운동의 장엄하고 처절한 드라마를 엮어 놓았다. 전시는 남북전쟁 때 링컨의 노예해방령(1863년)으로 시작한다. 패배한 남부는 주법(州法)과 시행령으로 연방 차원의 흑인 보호막을 교묘히 제거했다. 백인 우월의 사회 장치는 100년간 건재했다. 그것을 깼던 로사 파크스(버스 보이콧), 서굿 마셜(공립학교의 흑백 통합)의 대형 사진은 킹의 모습과 어울린다. 정의를 향한 도전과 집념의 체취가 풍긴다. “오바마의 가능성은 이들 세대의 용기와 희생 덕분”이라고 안내원이 말한다.

60년대 남부 주에선 흑백 결혼을 중죄(重罪)로 처벌했다는 전시물이 눈길을 끈다. 오바마의 하와이 출생은 행운인가. 아프리카 케냐의 흑인 유학생과 미국 중부 캔자스주 출신 백인 여학생은 60년에 만난다. 오바마 부모는 하와이대 학생이었다. 전체 50개 주 반 이상에서 흑백 혼혈결혼(miscegenation)이 불법이던 시절이다. 하와이는 원주민·동양계 등 인종·문화에서 본토와 달랐다. 부모의 결혼은 그래서 가능했다.

킹 목사의 리더십은 대중 동원의 전략과 감수성에서 돋보인다. 그것은 오바마에게 주입된다. 킹은 비폭력으로 흑인들을 이념 무장시켰다. 시위·보이콧·농성 전술을 구사했다. TV를 활용했다. 흑인 시위대에 대한 경찰견 풀기, 소방호수 세례는 TV에 충격적으로 묘사됐다. 경찰의 과잉 진압은 백인 사회를 개탄과 각성으로 상당 부분 바꿔놓았다.

“미국사회는 인종적 교착상태(racial stalemate)다.” 필라델피아 연설에서 오바마가 내린 진단은 설득력이 있다. 흑백 간 빈부와 교육 격차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그 상태를 깨야 미국사회는 한 단계 진전된다. 그것은 오바마의 대담한 도전이다. 미국의 시대적 과제다.

멤피스(테네시주)에서 박보균 정치분야 대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