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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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2부 불타는 땅 떠난 자와 남은 자(32)함께 헤엄쳐나가던일행은 순식간에 뿔뿔이 흩어졌고 캄캄한 바다는 끌어 올려지는 자들의 비명과 몽둥이가 바닷물을 때리며 철썩이는 소리로 뒤덮였다. 잠수를 하면서 몸을 숨기고 자신들을 뒤쫓는 배의 방향과는달리 오히려 섬쪽으로 헤엄쳐가던 때를 진규는 떠올렸다.배를 피해 다시 육지로 나왔을 때는 희뿌옇게 날이 밝고 있을 때였다.
맨발로 돌자갈을 밟고 바닷가를 빠져나가 산으로 숨어 들었다.
먹어도 될 듯 싶은 풀잎을 뜯어 씹으며 산에서 이틀을 보낸 후,그는 밤이 되기를 기다려 민가로 찾아들어갔다.그러나 그는 아무 것도 먹을 것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아침이 되어 밥을 짓기 위해 나온 여자를 뒤에서 틀어쥐고 목을 조이면 서 그는 먹을 것을 찾았다.생 좁쌀과 옥수수를 뺏앗아 다시 산으로 올라간그는 그 낱알을 씹으면서 낮에는 잠을 잤다.밤이 되어서야 이슬이 내리는 산을 걸어서 능선을 두 개 타고 넘었을 때,그는 자신이 일행과 함께 약속했던 나가사키와 는 전혀 다른 쪽으로 가고 있음을 알았다.
다시 길을 되잡아 밤이면 산을 타고 넘었다.그렇게 헤매던 산속에서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떴을 때,그는 보았다.자신이 죽음을넘듯이 헤엄쳐 나왔던 그 섬이 멀리 바다 위로 떠 있지 않은가. 살아서,어떻게든 버텨야 한다고 자신을 지탱하던 기둥이 일시에 무너져내리면서 그는 미친듯이 풀뿌리를 쥐어 뜯으며 짐승처럼소리치고 있었다.
굶어 죽으나…잡혀서 맞아 죽으나 마찬가지다.그것뿐이었다.바닷가에 나가면 뭔가 잡아먹을 것이 있으리라고 믿어서도 아니었다.
더 산에서 버틸 아무 것도 그에게는 남아 있지 않았다.지쳐 쓰러진 채 가물거리는 의식 속에서 밤을 산에서 보낸 그는 새벽이왔을 때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바다를 향해 내려갔었다.
여전히 자신의 등 뒤에 서 있는 아내를 돌아보고 나서 에가미가 진규를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물었다.
『이 여자를 알아 보겠소?』 『네.물을 갖다주셨습니다.두 분이 저를 이리로 데려 오신 것도 알고 있습니다.고맙습니다.』 『어딜 가려는 거요? 갈 데는 정했소?』 진규가 말없이 고개를숙였다. 『일본이 다 불바다인데… 지금 그 몸으로 어딜 갈 수가 있겠소?』 『당신….』 가쓰요가 놀라며 남편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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