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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못 미더워 … ‘동네 네트워크’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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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울 송파구 ‘골목 호랑이 할아버지’ 회원들이 지난달 27일 오후 송파초등학교 정문에서 하굣길에 나선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도록 돌봐주고 있다. [사진=안성식 기자]

“딸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성추행하는 남자에게서 벗어나려다 넘어져 앞니 두 개가 부러지는 장면이 CCTV에 찍혀 신고했는데도 왜 수사를 안 합니까.”

서울 구로구에 사는 C씨는 지난달 31일 구로경찰서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C씨는 담당 형사에게 전화를 걸고, 부인이 경찰서를 찾아가 진단서를 냈는데도 수사 기미가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일산 초등생 납치 미수 사건으로 대통령이 나서 호통 치고 6명을 직위해제하니 금방 범인을 잡던데, 이 CCTV도 대통령에게 보내면 빨리 잡을 건가요”라며 경찰을 비난했다.

잇따른 강력 범죄에 대한 경찰의 미온적 수사가 도마에 오른 가운데 일선 경찰서에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시민들은 특히 여자 아이들을 상대로 한 범죄를 신고했는데도 경찰이 늑장 수사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치안을 경찰에만 맡길 수 없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주민들이 ‘동네 네트워크’를 활성화해 자녀들의 안전을 지키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우리 아이는 우리가 지킨다=정진영(39·여·경기도 성남시 이매동)씨는 요즘 초등생 딸을 데려오려고 일주일에 두 번 영어학원을 찾는다. 정씨의 차엔 학원에 함께 다니는 이웃집 초등생 두 명도 탄다. 정씨가 이웃집 엄마 세 명과 교대로 애들을 차에 태워 데려오기로 한 것이다.

각 학교 어머니회도 팔을 걷어붙였다. 서울 오금초교의 ‘녹색어머니회’ 소속 학부모들은 지난달부터 오후 1~2시 통학로에 나가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 학교 이혜숙(42·여) 교사는 “안양 초등생 사건 이후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주로 오후 2~4시 학교 주변 100m 안에서 발생한다’는 보도를 보고 어머니들이 결정했다”고 전했다.

동네 어른들이 나선 곳도 있다. 서울 송파구(구청장 김영순)가 운영하는 ‘골목 호랑이 할아버지’ 회원들은 오후 1~4시 동네 초등학교 학생들의 하굣길을 보살펴 주고 있다. 만 65세 이상의 노인 600여 명으로 구성된 회원들은 두 명씩 짝을 지어 어린이 놀이터와 통학로를 순찰한다. 회원 박재범(70)씨는 “모든 범죄를 막을 순 없겠지만 동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작은 보탬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노인정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훨씬 보람차다”고 말했다.

송파구는 전문경비업체 S사와 협약을 맺고 ‘안전보안관 제도’도 운영 중이다. 일산 사건 발생 이후 경비업체 직원 40여 명이 낮 12시부터 오후 2시, 오후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관내 32개 초교와 공원, 유흥가 주변을 순찰한다. 송파구는 초등생들에게 무인호출기를 나눠주고 이를 누르면 경비업체 직원이 출동하는 시스템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위치 서비스 이용도 폭증=이동통신 업체에 따르면 자녀의 휴대전화 위치 추적 서비스를 신청하는 부모가 급증하고 있다. KTF의 ‘아이서치 서비스’는 3월 가입자가 지난달의 두 배가 넘는 1만5000여 명에 달했다. 자녀의 위치를 수시로 통보하고 지정 장소를 벗어나면 부모에게 문자 메시지가 자동 전송되는 기능이다. SK텔레콤의 ‘자녀안심서비스’도 이번 달 신규 가입자가 지난달에 비해 두 배가량 늘었다. 24시간 자녀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고 자녀가 긴급 버튼을 누르면 보호자에게 연결되는 어린이 전용폰의 3월 한 달 판매량은 2월에 비해 4배가량 증가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는 “동네 네트워크가 활성화되는 것이 도시화·핵가족화로 사라져가던 이웃 간의 정을 회복하고 아이들에게도 불안감을 없애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글=박유미·한은화·임주리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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