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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대통령이 나서야 범인을 잡는 경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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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안양 초등학생 납치·살해 사건과 일산 초등학생 납치 미수 사건을 처리하는 경찰의 모습이 너무 불안하다. 조직과 경찰력 운영 방식이 비정상적이기 때문이다. 경찰력이 체계나 계통에 따라 작동하지 않고, 대통령의 질책이나 지휘부의 지시가 있어야 제 기능을 발휘한다. 이 같은 지적은 수십 년 전부터 있어 왔지만 개선되고 있다는 조짐은 찾아보기 힘들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최전선의 기관이라는 책임의식이 과연 있는지 의심스럽다. 지휘부 따로 말단 조직 따로 움직이는 경찰 조직에 국가 질서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맡겨야 하는 것인지 답답하다. 언제까지 우리 사회가 이렇게 움직여야 하는가.

안양과 일산 사건 용의자 검거의 일등공신은 경찰시스템이 아닌 시민이었다. 경찰이 80여 일 동안 1만여 명의 경찰력을 동원해 혜진·예슬양의 행적을 추적했지만 허사였다. 예비군 훈련을 받던 시민이 시신을 발견하자 수사에 탄력이 붙었고, 닷새 만에 범인이 붙잡혔다. 일산 초등학생 납치 미수 용의자 검거 역시 피해 학생 부모의 노력이 계기였다. 그동안 경찰의 강력사건 처리 시스템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관심도 이들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안양 사건의 경우 대통령의 질책이 있은 바로 다음날 용의자를 검거했고, 일산 사건 용의자는 이 대통령이 수사본부를 방문한 지 6시간 만에 붙잡혔다. 경찰에 수사 능력이 충분히 있었다는 얘기다. 경찰관 각자는 소명의식과 ‘머슴 정신’이 충분했는지 통렬하게 반성해야 하는 이유다. 대통령이 질책해야 작동되는 조직이라면 참으로 한심하다. 능력은 있는데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태만이거나 책임의식의 부재다. 수만 명의 조직이 대통령의 등장에 따라서만 움직인다면 죽은 조직이요, 기회주의적 조직이다. 왜 경찰이 이런 조직으로 타락했을까. 가장 기초적으로는 기능과 조직이 제대로 짜였는지, 인원 배정은 적절한지, 특정 기능이나 범죄에 대한 전문가 양성이나 교육은 제대로 이뤄졌는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이어져야 한다. 3, 4개 파출소를 묶어 효율을 높이겠다며 만든 지구대가 국민을 위해 역할을 제대로 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것은 경찰의 부정적인 유산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한다. 전시행정, 권력 비위 맞춤, 경찰력을 이용한 부정부패 등 체질이 문제다. 어청수 경찰청장은 일산 사건이 발생한 지난달 26일 ‘어린이 납치·실종 사건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일산 사건 용의자가 검거된 다음날인 어제는 전국 경찰관서에 1056명의 전담 경찰관으로 ‘실종사건 수사 전담팀’을 운영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중요한 정책이 어떻게 하루 이틀 만에 나올 수 있는가. 순발력은 놀랍지만 현실적이고 실효성 있는 내용을 갖췄는지, 조직이 체계적으로 움직여 정책을 생산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차제에 경찰은 조직이 체계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틀을 다시 짜야 한다. 더 이상 전시행정과 주먹구구식, 눈치보기식 운영은 안 된다. 인원과 장비, 제도 등의 여건을 따질 만큼 여유롭지 않다. 실효성이 부족한 것으로 확인된 ‘범죄자 신상공개 제도’를 전면 재검토하고, 성범죄자에 대한 전자팔찌 제도의 조기 도입도 법무부와 협의해야 한다. 우리는 경찰력이 이 나라의 제도로서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정상이라고 믿는다. 경찰 조직원 전체, 특히 수뇌부의 분발과 각성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