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은 오랫동안 서로에게 ‘가깝고도 먼’ 나라였다. 지리적으로는 더없이 가깝지만, 역사·정치의 골은 쉬 메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먼’이란 꼬리표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고 가는 관광객을 통해서다. 지난해 일본을 찾은 한국인이 260만 명, 한국을 찾은 일본인은 224만 명이었다. 지금 두 나라는 서로 관광객 1위 국가다. 한걸음 더 나가 두 나라는 2008년을 ‘한·일 관광 교류의 해’로 정하고 양국 왕래 관광객 수 560만 명 달성을 목표로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있다. 지난 2월 한국에서 한·일 교류 대축제가 이틀간 열렸다. 9월에는 한·일 축제한마당이 열린다. 오키나와에서 홋카이도까지 지역 따라 다른 일본, 봄에서 겨울까지 철따라 달라지는 일본의 주요 관광지 모습을 소개한다. 요동치는 환율 탓에 선뜻 해외여행 나서기가 힘들어진 요즘이지만, 꼼꼼히 ‘예습’하면 알뜰한 일본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시가현 비와호 … 비와호엔 벚꽃
비와호는 섬 속의 바다다, 섬 속의 바다에 또 섬이 있다.
(시가현)=전수진 기자
해상왕 장보고의 흔적을 찾아 - 엔라쿠지(延曆寺)
물론 장보고 비석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지는 않았을 터다. 다른 볼거리도 많다. JR노선 히에이산-사카모토역에 내리면 먼저 케이블카(www.sakamoto-cable.jp)를 타게 되는데, 울창한 소나무 숲의 절경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엔랴쿠지다. 요카와지구를 비롯해 본당이 있는 동탑 지구 및 서탑 지구까지 돌아보려면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중 동탑지구 본당인 곤본추도오(根本中堂) 안에 모셔진 ‘불멸의 법등’이 엔랴쿠지 구경의 핵심이다. 이 등롱은 무려 1200여 년 동안 꺼지지 않고 본당을 밝히고 있단다. “묵묵히 한 분야에 정진하면 언젠가 세상을 비출 수 있으리.” 엔랴쿠지 창건자 사이초의 가르침을 곱씹으며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는 길, 저 멀리에 바다 같은 호수 비와호다.
일본에서 만나는 미국의 미시간 - 비와호 크루즈
꼭 비와호가 아니더라도 물을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오우미하치만(近江八幡)도 권할 만하다. 특히 조선통신사를 위해 막부 최고 책임자 쇼군(將軍)만이 다닐 수 있던 길을 내주었다는 ‘조선인가도’를 거닐어 보는 것도 색다른 의미가 있다. 깔끔하게 정비된 돌길에는 뛰어난 장사꾼으로 이름을 날렸던 오우미 상인들의 정취가 스며 있다.
백제의 숨결을 느끼다 - 햐쿠사이지(百濟寺)
비와호를 내려다보며 노천온천 - 오고토 온천지대
아무리 백제사의 짚신을 만지며 건강을 빌었다고 해도 이 정도 일정을 소화했으면 지치게 마련이다. 오쓰시의 오고토 온천지대에 들러 쉬어가자. “피부가 부들부들해지는 마법의 온천수”라고 자랑이 대단한 곳이다. 특히 유모토칸은 옥상의 노천온천이 유명하다. 온천욕을 하며 비와호의 경치를 즐길 수 있어서다. 남탕·여탕이 자주 바뀌니 망신당하지 않으려면 들어가기 전에 꼼꼼히 살펴야 한다. 다른 숙소로는 비와호 변에 우뚝 솟은 오쓰 프린스 호텔이 추천할 만하다. 교토 관광을 마치고 시가현으로 넘어오는 관광객들을 위해 교토역에서 호텔로 바로 짐을 배송해 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너구리 도자기는 시가현의 명물이다. 술병을 들고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 이 녀석은 행운의 상징이다. 혹 아나, 너구리 한 마리 데려오면 다시 시가현에 갈 행운이 뒤따라올지?
TIP
■시가현으로 가려면 간사이 국제공항을 거쳐야 한다. 공항에서 내려 JR 특급 하루카 열차를 타고 1시간13분이면 교토역에 닿는다. 여기서 JR 비와호 선(線)을 타면 10분 만에 시가현 오쓰역에 다다른다. 간사이 공항 1층 로비와 교토역 2층에 한국어 안내를 해주는 관광안내소가 있다. 더 자세한 정보는 비와호 방문객 안내소 한국어 홈페이지(info.biwako-visitors.jp/biwakonotabi/Korean)에서 얻을 수 있다.
이시가키섬 … 오키나와엔 맹그로브
오키나와엔 열대식물이 많다. 맹그로브 나무와 400년 넘은 열대나무.
섬의 수호신 ‘시사’
문제는 변덕스러운 날씨다. ‘이시가키’라는 이름은 태풍을 막으려 집 주변을 둘러싼 돌담을 의미한다. 바람이 많이 불고 태풍이 잦아 집을 낮게 짓고 돌을 쌓아 담을 만들었다. 섬의 날씨는 수시로 변했다. 도착 첫날은 쨍 하고 햇볕이 내리쬐더니 다음 날은 비바람이 몰아쳤다. 그 다음 날은 흐렸다 맑았다를 반복하더니 마지막 날은 눈부신 햇볕이 돌아서는 발걸음을 붙잡았다.
리조트를 포함한 섬 곳곳에 사자 모양의 수호신 ‘시사’가 놓여 있다. 암수 한 쌍으로 입을 벌린 쪽이 수컷이다. 제주도의 하르방처럼 집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느낌은 사뭇 다르다. 하르방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온화하게 웃고 있다면 시사는 험상궂은 표정으로 곧 싸울 태세다. 섬 주변 바다는 온통 초록빛이다. 물이 따뜻해 스노클링을 하며 색색의 물고기들을 구경할 수 있다. 해변의 모래는 쌀가루처럼 곱고 부드럽다. 동남아 휴양지가 부럽지 않다.
물소 타고 바다 건너기
이리오모테 섬에서는 가는 곳마다 ‘일본 최남단’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관광버스 운전 기사는 항구 앞 교차로를 지나며 ‘일본 최남단 신호등’이라고 말했고, 이리오모테 온천도 ‘일본 최남단 온천’이라고 소개했다. 어쨌건 뜨끈한 온천 물에 몸을 담그니 뭔가 특별한 곳에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클럽메드 가이드 지나씨는 “일본인들은 어떤 관광 상품이든 의미 부여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이리오모테 섬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유부(由布)섬으로 건너가는 물소 여행이다. 섬 사이의 바다는 어른 종아리 깊이로 물이 얕다. 배 대신 물소가 수레를 끌고 바다를 건넌다. 수레를 끄는 노인은 자신의 물소 ‘고로’가 가장 힘이 세다고 자랑했다. “이 물소는 10년 동안 나와 농사를 지은 뒤 이제 8년째 수레를 끌고 있죠. 가족처럼 가까운 놈이에요.” “한국에서 왔다”는 객들의 서툰 일본어에 흥이 나는지 노인은 서랍에서 오키나와 전통 악기인 ‘산센(三線)’을 꺼냈다. 그는 영화 ‘눈물이 주룩주룩’에 나온 오키나와 전통 민요를 구슬피 불러젖혔다. 고로가 주인의 노래장단에 맞춰 철퍽철퍽 걸음을 옮긴다. 파란 바다 사이로 해가 기울고 있었다.
리조트에서 달콤한 휴식
이시가키 섬에 있는 ‘클럽메드 카비라’는 일본 전통 문화에 유럽 분위기가 녹아있는 곳이다. 떠들썩한 저녁 파티는 전 세계 클럽메드 어느 곳과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대나무 오일로 마사지를 해주는 스파 ‘울루’나 기모노를 입은 직원들을 보면 일본 한가운데 와 있는 느낌이다. 식당에서는 유럽식 파스타·스테이크와 오키나와 전통 요리를 함께 내놓는다. 오키나와 요리는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지 않는 고유의 재료를 사용한다. ‘고야참플’은 오키나와에서만 나는 울퉁불퉁한 오이 ‘고야’를 야채와 함께 볶은 것이고 ‘모즈쿠스’는 이 지역의 해초를 식초에 절인 음식이다.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맛있지는 않았지만 독특한 풍미를 체험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오키나와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베니이모(적고구마)’다. 속이 빨간 고구마를 이용해 만든 디저트와 빵, 아이스크림을 기념품 가게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이시가키 섬은 사탕수수로도 유명하다. 섬의 특산물인 흑설탕은 과자처럼 집어 먹기도 하고 땅콩이나 흰 콩에 묻혀 먹기도 한다. 설탕을 오도독 오도독 씹어 먹으면서 공항으로 가는 길은 달콤하고 또 아쉬웠다. ‘일본이면서 일본 같지 않은 곳’, 오키나와의 매력에 빠져 있었나 보다.
이시가키 섬(오키나와)=홍주연 기자
TIP
클럽메드 코리아(www.clubmed.co.kr)는 5월 21일부터 9월 10일까지 ‘오키나와 카비라 패키지’를 선보인다. 대만을 경유하는 전세기를 이용한다. 6인 이상 그룹 고객과 60세 이상 고객에게는 1인당 10만원의 할인 혜택을 준다. 매주 수요일 오전에 출발하는 3박4일 일정은 121만원부터, 토요일 오전에 출발하는 4박5일 일정은 147만원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