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가 좋아서” 해설가 데뷔 총장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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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야구기자가 나에게 물었다. ‘왜 하필 베어스 팬이냐’고. 나는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좋은 데도 이유가 있느냐’고.” (프로야구 두산 2007년 팬북 머리글)

야구 매니어로 잘 알려진 정운찬(60·사진) 전 서울대 총장이 야구 해설자로 나선다.

정 전 총장은 교통방송(TBS) FM의 프로야구 특별 해설위원으로 29일 잠실 개막전(두산-히어로즈)에서 마이크를 잡기로 했다. 교통방송 편성팀 주용진 PD는 24일 “TBS가 개국 이래 처음으로 올 시즌 야구 중계를 한다”며 “청취자들에게 쏙 다가갈 수 있는 고품격 해설자를 찾았고, 힘들게 정 전 총장을 섭외하게 됐다”고 말했다.

주 PD에 따르면 지난 1월 야구 중계를 하기로 결정한 뒤 사장이 직접 “(야구에 조예가 깊은) 정 전 총장을 모셔오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이때부터 3개월 가까이 삼고초려를 했다. “내 영역이 아니니 다른 해설자들에게 누가 되지 않겠느냐”는 게 정 전 총장의 처음 반응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전사적인 ‘부탁’으로 마음이 움직였고, 결국 해설자로 나서게 됐다. 교통방송은 개막전 외에도 정 전 총장이 주요 경기 해설을 해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 전 총장과 야구, 그것도 두산과의 인연은 각별하다. 정 전 총장은 서울대 상대 재학 시절, 상대 동창회장이던 OB맥주의 고 박두병 회장에게서 장학금을 받았다고 한다. 이때의 고마움으로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뒤 OB(두산의 전신) 팬이 됐고, 국내 프로야구 경기를 즐겨 보게 됐다.

자신이 서울 청운중 2학년 때까지 야구선수로 직접 뛰기도 했으며, 70년대 미국 유학(마이애미대) 시절엔 한 해에 200게임 이상 메이저리그 경기 중계를 봤다고 한다. 이 덕분에 야구에 대한 안목이 전문가 경지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균 두산 마케팅팀 과장은 “두산 경기가 열리는 날 잠실구장 중앙 지정석에 가면 항상 정 전 총장을 만날 수 있다”며 “플레이 내용이 궁금하거나 정확한 해설을 듣고 싶어하는 연간 회원들이 자주 찾아가 해설을 듣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 전 총장은 지난겨울 동대문 야구장 철거 소식을 듣고는 철거 반대 성명에 서명하기도 했고, 현대 유니콘스 매각 때에는 팀 살리기 운동에도 동참, 성금 100만원을 쾌척하기도 했다. 서울대 총장 퇴임 후 인터뷰에선 “그간 야구와 관련해 보고 들은 것을 책으로 내보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의 야구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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