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에살고재산도키우고>강원도 홍천군 전치곡리 許鎭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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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만해(萬海)한용운(韓龍雲)선생은 딸을 출산한 뒤 아내에게 먹일 미역을 사러 홍천장에 나왔다가 그 길로 출가해 버렸다.이제나 저제나 미역을 사가지고 오시려나 기다리다가 남편이 출가했다는 소식을 들은 아내의 표정이 어떠했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강원도홍천군북방면전치곡리에 부지 4백평의 널찍한 전원주택을 마련해 살고있는 허진(許鎭.41.의류판매업)씨 가족들이 이못지 않은 황당한 일을 경험했던 것은 그가 국민학교에 막 입학했을 즈음이었다.강원도 정선에 사는 친구를 봐주러 간다고 내려간 아버지(한의사)가『나 이곳이 마음에 들어 여기서 살기로 했으니 짐 싸가지고 다들 내려와라』는 연락만 하고는 그대로 눌러앉아 버린 것이다.
정선 골짜기에서의 팔자에 없는 전원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서울 토박이인 許씨가 시골생활 3년(국민학교 1~3학년)의 추억을 고이 간직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그때 아버지의 파격적인 행동 덕분이었다.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고나 할까.서울 강남 뉴코아백화점에서 의류가게 2곳을 운영하고 있던 그는 90년 봄 가게 한곳을 처분해 여유 돈이 생기게 되자 사업을 키울 생각은 않고 3천만원을 들여 이 땅을 샀다.백화점 건너편에 사무실이 있는 전원주택전문업체 「돌」(02(536)2500)을 통해 이 터를 소개받았다. 원래 방3칸과 부엌의 4칸 구조로 돼 있던 토담집은 뼈대만 남기고 말끔히 수리해 침실용 방 1칸,부엌.식당겸 거실의2칸 구조로 개조했다.약 1백평규모의 마당에는 잔디를 깔고 위쪽의 자투리땅에는 계곡물을 끌어들여 작은 연못을 만든 다음 그옆에 통나무로 정자를 지었다.아래쪽 넓은 밭에는 대추.자두나무등의 온갖 유실수를 심었다.
약 2천만원을 들여 그렇게 다 꾸미는데 거의 1년 세월이 걸려 91년 8월에야 정식으로 이사했다.집뒤 모래재만 넘으면 바로 경춘국도와 연결돼 출.퇴근시간은 한시간 남짓.그러나 국민학교가 멀리 떨어져 있어 아이들과 아내는 서울집에 그대로 머무를수 밖에 없었다.졸지에 주말가족이 됐지만 그의 가족이 얻은 소득은 적지 않다.총투자비 5천만원.
서울서 이만한 분위기 내려면 5억원 들이고도 어림없다는 것이첫번째 소득.
국민학교 1학년과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간식으로내준 과일을 먹은 후 씨를 주머니에 받아와 저희들끼리 마당에 심을 정도로 자연의 섭리를 깨우친 것이 두번째 소득.팔봉산이 지척에 있고 홍천스키장이 30분거리에 있어 서울 에 있을때처럼길 막힐까 걱정할 필요없이 가고 싶은 곳 어디나 돌아다닐 수 있게 된 것이 세번째 소득.아버지처럼 엉뚱한 방법은 아니었지만그도 일은 제대로 저지른 셈이다.
李光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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