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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유괴 예방 교육 프로그램 비교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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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 06면

“차에 타고 있는 사람이 ‘이리 와 보라’고 부를 때 어떻게 해야 하지요?”

美선 정규 교육 과정…한국은 사건 때만 강조

교사의 물음에 한 어린이가 손을 든다. “그 사람이 팔을 뻗어도 닿지 않을 만큼 떨어져 있어야 해요.”

미국에서 새 학기가 시작되면 어린이들이 반드시 받아야 하는 교육이 있다. 2주간의 의무 안전교육. 그중에서도 유괴 예방교육은 핵심 프로그램이다. 시민단체인 ‘아동유괴예방(CLP)’ 소속 전문가들이 미 전역의 5000여 학교로 직접 찾아가 매뉴얼 교재를 갖고 아이들을 가르친다.

그렇다면 한국은? 우리 초등학교의 경우 연 34시간의 재량 활동 중 21시간은 안전교육을 실시하도록 의무화돼 있다. 하지만 유괴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 유치원에서는 1년에 한두 차례 교육청 공문이 내려올 때 교사가 상식적인 수준에서 주의사항을 전하는 데 그친다. 4년간 미국 생활을 한 이혜경 서울 마포구립어린이집 원장은 “미국에서는 유괴 위험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작은 것까지 꼼꼼하게 챙기도록 하는 반면 우리는 기본적인 것들을 무시해 버리는 것 같다”고 말한다. 어린이 대상 강력범죄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는 높지만 정작 유괴를 막을 수 있는 교육 시스템에는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혜진양 살해 사실이 밝혀진 뒤인 이달 19일에야 유괴 예방교육을 하라는 지시를 전국 유치원에 내렸다. 보건복지가족부 산하 ‘실종아동전문기관’에서 발행한 실종·유괴 예방 워크북 파일을 전국 시·도 교육청에 배포한 것도 그때였다. 매뉴얼 내용 역시 범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화여대부속초등학교 김정효(이화여대 초등교육과 교수) 교장은 2005년 서울시 교육청이 배포한 ‘안전교육 지도자료’에 대해 “요즘 어린이 유괴나 성폭력은 주로 면식범에 의한 것이 많은데 이 교재는 ‘유괴범은 낯선 사람’이란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장은 “낯선 사람을 조심하라는 사실을 계속해 암기시키기보다는 상황극 등을 통해 실효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에서 발간한 ‘유아를 위한 안전교육’ 교사용 지침서에도 14쪽 분량의 미아 예방 지침만 수록돼 있을 뿐 유괴 예방 수칙은 없었다.

미국의 유괴 예방 매뉴얼은 매우 구체적이다. ‘전국실종·학대아동센터(NCMEC)’의 안전수칙은 ▶빈집에 들어갈 때는 문이 열려 있는 등 누군가 침입한 흔적이 없는지 살필 것 ▶아이를 혼자 집에 둘 경우 믿을 만한 이웃에게 여분의 열쇠를 맡길 것 ▶놀이공원에 갈 때는 아이의 이름표를 옷이나 가방에 부착하지 말도록 할 것 등 상황에 따라 맞춤형으로 제시한다.

스쿨폴리스(학교경찰) 제도도 주목할 만하다. 현직 경찰관이 각 학교에 상주하면서 상시적으로 범죄 예방교육과 상담을 한다. 학교에서 위급 상황이 발생하면 즉각 대처할 수도 있다. 국내에서는 퇴직 경찰관·교사가 담당하고 있지만 서울 572개 초등학교 중 72개 시범학교에서만 실시되고 있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유사시 어떻게 대응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초등학생 아들을 둔 홍모(40·여)씨는 “학교에서 예방교육을 하기는커녕 가정통신문 한 장 보내지 않았다”며 “직접 가르치려 해도 참고할 교재가 없는데, 매뉴얼이라도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경인교대 장인실(교육학과) 교수는 “어린이 대상 강력범죄가 터졌을 때만 임시 땜질 식으로 교육할 것이 아니라 관련 교육을 정규 과정으로 편입해야 한다”며 “현실적으로 유괴 예방 과목을 신설할 수 없다면 사회나 도덕 같은 기존 과목과 연계해 지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움말 주신 분
▶심우엽 춘천교대 총장 ▶이금형 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 ▶장인실 경인교대 교육학과 교수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시민의모임 회장 ▶정윤경 한국생활안전연합 정책국장 ▶박혜숙 전국실종아동인권찾기협회 대표 ▶오후근 강남경찰서 강력5팀 경위 ▶한효성 수원중부경찰서 강력5팀장 ▶정성만 서귀포경찰서 경위 ▶박정선 경찰대 교수 ▶김정효 이화여대 초등교육과 교수 ▶신지현 두산공과대 아동복지학과 교수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이혜경 마포구립어린이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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