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노사담합은 가짜 노사안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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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경제학회 세미나에서 “현재의 노사 안정은 정규직 근로자와 사용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근시안적인 노사 담합구조이며, 생산성 확대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회사의 탈법과 위법을 용인하는 대신에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담합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른 부담은 비정규직과 협력업체 근로자에게 떠넘겨져 이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노사관계가 안정된 것처럼 보인다는 지적이다. 맞는 이야기다.

그동안 대기업 노조들은 파업을 무기로 얻을 것은 다 얻어온 게 사실이다. 때로는 소유·지배구조나 경영권 상속과정의 약점을 교묘하게 물고 늘어져 사측을 압박하기도 했다. 이런 구조에선 정규직만 혜택을 누리게 된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비정규직의 임금 총액은 정규직의 48.2%에 불과했다. 하도급 업체의 평균임금은 대기업의 60%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협력업체들 사이에선 “우리가 임금을 올리면 초과이윤이 생긴 걸로 간주해 납품단가를 후려친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온다. 대기업 노사 간의 담합이 비정규직과 협력업체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노사 안정과 노사 담합은 구분돼야 한다. 노사 간의 담합은 현실 안주와 타락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꼬리를 문 노조간부들의 채용비리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고인 물에서는 생산성 향상이나 투자 확대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노사담합이 기업경쟁력을 약화시키고 해외로 투자를 내모는 악순환을 낳는 것이다. 이런 사슬을 끊기 위해 우선 사용자들의 투명 경영부터 주문하고 싶다. 노조에 약점이 잡히는 기업치고 시장에서 환영받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정규직 노조도 마음을 열고 역발상을 해 보았으면 한다. 비정규직과 협력업체만 일방적으로 쥐어짜서는 기술 혁신이나 품질 보장이 어렵다. 오히려 대기업 정규직이 한 발 물러서는 게 지혜일 수 있다. 경영자원의 여유분을 비정규직이나 협력업체 쪽에 돌릴 수 있다. 길게 보면 이 길이야말로 기업경쟁력을 높이고 정규직 자신들의 미래를 위한 투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