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매너의 역사" "전통의 날조와 창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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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우리 사회에서는 세계화에 대한 반작용으로,혹은 세계화에 앞선아이덴티티 확립을 위해 전통찾기 작업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매달리는 일면이 있다.유.무형문화재 복원사업과 민족뿌리와 정기찾기사업이 그렇고,『일본은 없다』나 『무궁화 꽃 이 피었습니다』류의 책이 많이 읽힌 것도 그런 분위기 때문이라 해도 무방하다. 이렇게 의도적 차원에서 재현되는 전통은 바로 그 순간에 새롭게 창출되는 것이지 오랜 역사를 통해 면면히 내려오던 그 모습은 절대 아니다.이렇게 볼때 전통은 의식하지 않은채 이어져오는 관습이나 인습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다.
전통에 대한 수요가 그 어느때보다 높은 시점에 번역 출간된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 편저의 『전통의 날조와 창조』(최석영 옮김.서경문화사 刊)와 독일 역사학자 노버트 엘리아스의 『매너의 역사』(유희수 옮김.신서원 刊)는 전통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는데 도움이 될만한 책들이다.
『전통의 날조와 창조』는 주로 영국 궁정의식을,『매너의 역사』는 프랑스 궁정의식의 변천을 통해 민족의 자긍심 고양이나 일부계층의 특권유지를 위해 전통이 의도적으로 창출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아울러 이들의 전통 창출이 식민지배에 어떻게 이용되었는가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전통의 날조와 창조』를 보면 영국왕실의 의례변화는 바로 군주의 정치권력 변천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변화의 특징은 국내적으로 정정(政情)이 불안하고 국제적으로 혁명이 빈발하면 할수록 영국왕실의 의례에는 그전에 없었던 독특성과 영 속성이 새롭게 가미되었다는 사실이다.국제정세가 불안하던 1910년을 전후해 왕실의 대관식과 즉위기념식등에 합창단과 오케스트라연주가 화려하게 덧붙여짐으로써 왕실에 대한 신비감을 더 높이는 현상이 일어난다.이런 신비성을 바탕으로 아프리 카.인도등의 지배자들과지식인들에게 영국국왕은 전지전능하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신에 가까운 존재라는 이미지를 심어줌으로써 그들의 식민구조 속으로 편입시키는데 성공했다고 보았다.
홉스봄은 또 대중운동에서도 전통의 창출이 끊임없이 이뤄졌음을지적한다.메이데이의 경우 역사적으로 보면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극히 자연스런 봄의 축제였을 뿐인데 그 축제에 노동자들이 의례와 상징을 부여함에 따라 오늘날과 같은 의미로 변질되었다는 설명이다.
『매너의 역사』는 프랑스 상부계층이 행동양식에 끊임없이 섬세함과 세련됨을 추구한 것도 자신들과 부르주아계급에 차별성을 두려는 노력이었다고 주장한다.오늘날 베르사유궁의 화려함과 웅장함에 예술적으로 감탄만 할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문명화」로 불린 이런 변화는 부르주아계급으로까지 확대되면서 서구인 특유의민족적 자긍심으로 작용,그 시대에 보다 「원시적인」사회에 대한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에 크게 이바지한다.이 책의 저자 엘리아스는 『행동양식의 세련화는 바로 본능적 충동의 억압이어서 세련된 행동양식을 얻었을지는 몰라도 자연스런 삶을 잃고 말았다』며 전통 창출의 역설적인 면을 강조하고있다.
鄭命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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