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칼럼>11%를 누가 뽑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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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4년간 1기 지방의원 5천1백70명 가운데 각종 비리(非理)로 형사입건된 사람이 11%에 해당하는 5백64명이었고,이중 구속된 사람만도 1백69명이었다.
이들의 비리내용은 지역이권개입에 따른 뇌물수수가 88명으로 가장 많았고 사기(78명),도박(11명),폭력,심지어 강간.강제추행등 온갖 범죄가 골고루 포함돼 있다.
이들 11%는 누가 뽑았는가.이런 죄를 지은 것은 그들의 책임이지만 이런 사람을 지방의원으로 뽑아준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서울시의회의 4년기록에 따르면 본회의 시정(市政)질문에서단 한번도 질문을 하지 않은 의원이 1백35명중 17명이나 됐다.단 한번 질문한 의원이 51명이었다.
인천시의회 청사에는 92년 69평 크기의 자료실이 일부러 마련됐지만 3년동안 책을 빌린 의원은 27명중 불과 10명이었다. 이처럼 시의회에 나가 민의를 대변하지도 않고 공부도 하지 않는 의원을 뽑은 사람은 누구인가.
지금 전국에는 다시 지방선거전이 열기를 뿜고 있다.1만5천여명의 후보들이 3천5백만명의 유권자를 향해 총공세를 펴고 있다. 그들은 기기묘묘하고 기상천외한 온갖 작전을 총동원해 유권자들을 공략하고 있다.전화로,컴퓨터로,TV로,광고로,유인물로,미인계(美人計)로…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혼을 빼고 넋을 잃게 만들려는 공략이 한창이다.
그중에는 비열하게도 뒤로 돈을 뿌리고 술을 먹이기도 하고,교묘한 언설(言說)로 자기를 과대포장하는데 혈안이 되고 있는 부류(部類)도 있다.
이런 후보들의 맹렬한 공략을 맞아 유권자진영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한마디로 허점투성이다.
자기동네 후보가 누군지 이름도 모르고,이름을 안다 해도 그가누군지,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유권자가 수두룩하다.
충북사람한테 누굴 찍겠느냐고 물었더니 서울시장후보이름을 대더라는 웃지못할 얘기까지 나왔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광역단체장이고 기초단체장이고 누가 나섰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람이 40.5%나 됐다고 한다.
광역단체장후보만 안다는 사람이 23.8%였다니 70%이상이 자기지역의 기초단체장후보를 모른다는 얘기다.얼마전 경기도에서 실시한 여론조사는 지사선거에 관심없다는 응답이 52%였다고 한다. 유권자진영이 이토록 무관심하고 방관적이어서야 후보들의 공세에 견뎌낼 수 있을까.1만5천여 후보중에는 늑대도 있고,여우도 있고,너구리도 있을텐데 유권자들의 이런 방관적 자세로 이들을 어떻게 골라낼 것인가.
유권자들의 무관심은 곧 나쁜 당선자를 양산(量産)하는 요인이되고 나쁜 당선자들은 나쁜 정치의 요인이 된다.
국민들은 나쁜 정치에 실망한 나머지 정치불신.정치허무주의.냉소주의에 빠진다.결국 자기의 무관심이 나쁜 정치와 정치불신으로되돌아 오는 것이다.
반면 유권자진영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현명한 선택을 한다면정치권(政治圈)이 평생 걸려도 못할 일을 투표일 단 하루에 성취할 수도 있다.졸부.철새.이중인격자.지역감정 선동주의자.유권자에 아부하는 님비주의자.권력만능주의자.착복주의 자… 이런 부류들을 투표로 쓸어내면 정치권은 금세 눈에 띄게 개선될 것이다. 그러자면 유권자도 공부해야 한다.후보자 바로 알기.정당 바로 보기 공부를 해야 하고 공약 바로 판단하기 공부도 필요하다.이른바 거물들의 속셈파악도 꼭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緣」떠나기운동이 중요하다.지연.혈연.학연 따위의 「緣」에 묶여 투표하면 바른 선택도 안되기 쉬울 뿐 아니라 찍어주고도 만만히 보이게 된다.
그 지역.그 문중은 으레 내 표니까 하고 생각하게 되면 유권자가 상전이 아니라 후보의 휘하세력이나「꼬붕」이 돼버리는 것이다. 1기 지방의원선거에서 11%의 비리관련자를 뽑은 것처럼 이번에 다시 그런 11%를 뽑아서야 되겠는가.
11%는 누가 뽑았나 하는 소리를 안듣기 위해 4년전 11%를 뽑은 것이 창피하고 원통해서라도 이번에는 각오를 새롭게 하자. 〈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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