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美 군수산업 시장에 ‘적기 출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코노미스트루이 갈루아 CEO가 이끄는 에어버스가 파상 공세로 경쟁사인 보잉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 달 말 에어버스의 모기업인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 European Aeronautic Defence and Space Company)이 미국 군수시장에 진출한 것은 ‘사건’으로 꼽히고 있다. 보잉의 안방에 ‘착륙’했기 때문이다. 일단 에어버스와 EADS의 CEO를 동시에 맡고 있는 루이 갈루아는 상한가를 치고 있다.

▶KC-45로 명명될 새 공중급유기의 기반항공기 A330-200.

갈루아는 미 국방부로부터 공중급유기 179대를 수주했다. 350억 달러짜리 계약이다. 미국 방산업체인 노스롭 그루먼과 컨소시엄을 이뤄 따낸 것이지만 실질적인 주도권은 에어버스와 EADS가 쥐고 있다.

BBC방송에 따르면 유럽 업체가 미국에서 대규모 군수 계약을, 그것도 항공 분야에서 따낸 것은 처음이다. 게다가 이번 수주로 에어버스와 EADS는 미국 내 군수시장에 본격 진출할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미군이 앞으로 30년에 걸쳐 1000억 달러 이상을 들여 교체할 공중급유기 시장을 선점하는 효과도 얻게 됐다는 게 AP통신의 분석이다.

충격에 빠진 보잉사

경쟁사인 보잉은 충격에 빠졌다. 지극히 그리고 당연하게 공중급유기를 수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보잉은 미 공군의 공군급유기 공급을 독점해 왔다. 미국 방산업체 2위인 보잉은 1위인 록히드 마틴과 함께 미국 내 군수시장을 사실상 양분해 왔다. 자만하다 유럽의 에어버스에 허를 찔린 것이다.

에어버스는 지난해 525명에서 853명까지 탈 수 있는 초대형 수퍼점보 여객기 A-380의 납품 지연으로 망신을 당했다. 그 과정에서 초대형 차기 여객기 드림라이너를 개발 중인 보잉은 반사 이익을 챙겼다. 에어버스에 여객기를 주문했던 일부 항공사가 보잉으로 발주처를 바꾼 것이다. 하지만 에어버스가 이번에 보잉의 안방인 미국 방위산업 시장에 진출한 것은 이 같은 타격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다.

지난달 29일 미 국방부가 공중급유기 사업을 에어버스에 맡기기로 했다는 발표가 나온 직후 보잉은 일시 침묵했다. 그러다 이달 1일에서야 “계약 내용을 검토한 뒤 어떻게 할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계약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고 허점이 있으면 이를 빌미로 제소해 계약을 번복해 보겠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보잉은 우선 미 의회의 보수적 의원들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중요한 무기체계를 외국 업체에서 구매한다는 데 반대 목소리를 내주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AFP통신에 따르면 실제로 공화당의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은 “미국이 아닌 유럽 기업에 계약을 내준 데 놀랐다”면서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에게 왜 외국 업체에 발주했는지 해명하도록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사실 에어버스는 이번에 총력전을 폈다. 특히 공중급유기 수주를 위해 몇 가지 필승 전략을 준비했다.

우선 KC-45로 명명될 새 공중급유기의 기반 항공기를 신형인 A330-200으로 제시했다. 이를 개조해 신형 공중급유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반면 보잉은 비교적 구형인 B767-200 기종을 기반 항공기로 내놨다.

767-200 기종은 82년 생산을 시작한 것으로 94년 양산에 들어간 330-200 모델보다 10년 이상 오래된 기종이다. 물론 오래된 기종이라고 공중급유기에 덜 적합한 것은 아니지만 정성의 문제다. 게다가 767-200 모델이 181~245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는 반면 A330-200 기종은 253~293명을 태울 수 있어 더 넉넉하다.

눈에 띄는 또 하나의 요인은 미국에 일자리를 양보했다는 점이다. 공중급유기 조립은 미국에서 하기로 한 것이다. 조립 공장은 앨라배마주 모바일에 세울 예정이다. 이 공장 하나로 1800여 개의 일자리를 미국에 제공할 수 있다.

주변에 관련 업종 수요도 있어 앨라배마주 전체에 5000여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최종 조립지를 기준으로 보면 앞으로 미 공군에 공급할 공중급유기는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Made in USA)’라는 것이다. 미 의회 등의 국수주의적 반발을 누를 수 있는 카드다.

미국 공군 차세대 공중급유기 KC-45는?

승무원: 3명
길이: 50.78m
폭: 60.28m(날개 포함)
엔진: 제너럴 일렉트릭 CF6-80E1A4B 2개
높이: 17.40m
최대속도: 시속 880km
운항속도: 시속 860km
항속거리: 1만25000km
최고상승고도: 1만2500m

이런 반응은 벌써 나타나고 있다. 조립공장이 들어설 앨라배마주 출신의 리처드 셸비 상원의원(공화당)은 “계약을 환영한다”면서 “이것이 우리 군을 위한 바른 결정인 동시에 앨라배마주에도 큰 소식”이라고 반색했다. 강력한 지원군을 확보한 것이다. 미국 업체인 노스롭 그루먼과 컨소시엄을 구성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와 함께 EADS와 에어버스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외교력을 총동원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EADS의 출자국이다. 지난해 대통령이 된 뒤 잇따른 친미 행보로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사르코지는 미국 방문 등에서 공중급유기 납품 건과 관련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등에게 간곡히 부탁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에어버스가 납품 지연 등으로 흔들렸을 때 유럽의 중요한 정치문제로 비화됐다. 사르코지도 여러 차례 에어버스 공장을 방문하면서 사태 해결을 약속했다. 그가 강조하는 일자리 확충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젠 미국 방산업체 인수할 차례”

사르코지 대통령은 공중급유기 수주 직후 대변인을 통한 성명을 통해 “갈루아 CEO가 까다롭기 이를 데 없는 방위산업 분야에서 계약을 따낸 공로를 치하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는 미국과 프랑스의 관계 개선도 의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수주의 이면에 외교적인 배려가 있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물론 이번 수주에서 가장 각광받는 인물은 갈루아다. 1944년생으로 프랑스 엘리트 학교인 HEC(Ecole des Hautes Etudes Commerciales: 고등상업학교)와 ENA(Ecole Nationale d’Admini- stration: 국립행정학교)를 마친 그는 프랑스 관계와 재계에 두루 두터운 인맥을 자랑한다.

그는 10년간 SNCF(국영철도회사)의 CEO를 지내다 2006년 7월 EADS, 그해 10월엔 에어버스 사장을 맡았다. 방위산업 CEO는 경영능력은 물론 정치력과 외교력까지 함께 필요한 자리라는 데서 그의 발탁은 여러모로 주목 받고 있다.

그는 취임 후 세계 경제가 부진한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상대적으로 경기를 덜 타는 군용기 시장 개척에 더욱 집중하겠다는 전략을 마련했다. 공개 석상에서도 여러 차례 이를 강조해 왔다. 이번 성공으로 고무된 갈루아는 더욱 공세적으로 나오고 있다.

그는 올해 안에 미국에서 2개 정도의 방산, 보안 업체를 인수해 EADS 산하에 두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EADS의 전략책임자는 이미 1월에 “EADS가 10억 달러 규모의 중형 항공우주 관련 기업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들에게 돌린 내부회보에서 그는 특히 ‘그룹의 신뢰성 강화’를 올해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납품 기일에 차질을 빚고 있는 A380기와 군용 수송기 A400M 유로피언, 해군 헬리콥터인 NH90 생산을 정상화할 것을 요구했다.

공장이 여러 나라에 나뉘어 있는 회사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더 강력한 지도력을 확보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를 발판으로 현재 노조의 반대에 부닥친 6개 에어버스 공장의 매각을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에어버스와 EADS의 경쟁력이 강화되면 갈루아는 이를 발판으로 프랑스는 물론 유럽의 정치적 실력자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그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에어버스와 EADS의 야망은 곧 갈루아의 욕망이다.

채인택 중앙일보 기자 ciimccp@joongang.co.kr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