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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엽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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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국어사전은 ‘엽관(獵官)’을 ‘관직을 얻으려고 갖은 방법으로 노력함’이라고 풀고 있다. 하지만 ‘엽관주의’라는 행정학 용어가 되면 뜻이 달라진다. 선거를 통해 집권한 정당과 정당지도자에게 관료의 임면에 대한 재량권을 부여하는 제도 내지는 원칙을 말한다. 인선 기준은 집권당에 대한 충성도다. 인사권자와의 친소관계를 우선하면 이와 별도로 정실주의라고 한다.

엽관주의는 미국에서 꽃피었다. 특히 1829년 취임한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은 엽관주의를 “민주주의의 실천적인 정치원리”라고 선언하고 인사의 기본 원칙으로 삼았다. 서부 개척민 출신의 잭슨은 동부 상류계층이 특권처럼 독점하고 있던 연방 관직의 문호를 일반에게 개방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임기 중 교체한 관직은 10% 수준이라고 한다.

이후 폭이 넓어져 간 엽관주의는 1845~65년 전성기를 맞는다. ‘전리품 제도’란 뜻의 ‘Spoils system’으로 불리게 된 것도 이 시기다. 상원의원이던 마시가 “전리품(戰利品)은 승리자의 것(To the victor belongs the spoils)”이라고 대놓고 표현한 게 유래다.

1861년 취임한 에이브러햄 링컨은 역대 최대 규모의 엽관인사를 단행했다. 취임 후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공직의 85%가량을 경질한 것이다. 그는 엽관주의를 가장 효과적이고 모범적으로 활용한 인물로 꼽힌다. 무엇보다 자격 없는 인물을 골라내는 눈이 있었던 모양이다.

일화 하나. 어느 공직 후보자에게 딱지를 놓은 그는 보좌관에게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얼굴은 그 사람 책임이 아니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에 링컨은 답한다. “40세가 넘은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엽관주의는 정치지도자의 국정지도력을 강화하고 관료기구와 국민 간의 동질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발전했다. 문제점도 명백하다. 전문성이 없고, 때론 무능한 사람이 공직자가 돼서 국민 일반이 아니라 정당의 특수 이익에 봉사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오늘날 엽관주의를 내세우는 민주국가는 없지만 실제로 근절되지 않는 것도 이 같은 양면성 때문이다.

요즘 국내에서 벌어지는 코드 인사 퇴진론 공방은 특이한 사례다. 지난 정권의 엽관인사를 새 정권의 엽관인사로 뒤집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임기를 보장하는 법이 지난해부터 시행 중이기 때문이다. 속없이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합의해 줬던 한나라당이 딱하다. 

조현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