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망대>헷갈리는 소비자 이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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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국의 소비자들은 다분히 불행하다.
물건을 하나 사든,서비스를 받든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일이흔해서 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한마디로 한국의 소비자들은 헷갈리기 때문에 불행하다.
명색이 자본주의 신전(神殿)의 신민(神民)으로서 대체 어떤 「자아(自我)」를 확립해야 할지 갈등을 겪을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전 재정경제원은 세계 8대 도시의 물가를 직접 조사해보니서울의 물가가 도쿄(東京) 다음으로 높더라고 밝혔다.
며칠뒤 공업진흥청은 냉장고.오버코트등을 대상으로 국산품과 외제품을 비교해보니 질(質)은 비슷한데 값은 외제가 훨씬 비싸더라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비슷한 시기에 이번에는 미국 농산물에 농약을 뿌리는 장면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마침 정부는 수입 농산물의 검역 절차 간소화 방침을 발표한 참이었다.
대체 국산품은 싼 것인가 비싼 것인가.
또 수입 농산물은 과연 불매 운동의 대상인가 아닌가.
헷갈리기 꼭 알맞은 일들이 아닐 수 없는데「소비자 이익」이라는 원칙에만 충실하다면 사실 별다른 논란거리도 못된다.
도쿄와 서울의 물가가 비싼 것은 쉽게 말해 이들 두 도시가 소비자보다 생산자를 더 보호하는 국가의 수도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쓰던 외제 냉장고를 갖고 들어오면 이익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는데 그런 말이 나오게 된 것은 현지의 싼 외제품들이 서울에서는 국산품보다 비싸게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 감귤도 미국에 수출하려면 반드시 정상적인 농약 처리를 해야 하는데,기준치나 잔류 여부를 막론하고 수입 농산물을 배격한다면 소비자들의 식탁 사정은 어찌 될까.
개방으로 인한 생산 기반의 재편(再編)을 나 몰라라 할 수는없다. 그러나 생산자들이 생산자다워야 하는 것처럼 소비자들은 철저히 소비자다워야 한다.최소한 국내외의 진입(進入)장벽 제거를 반대하는 것은 생산자의 일이지 소비자의 몫은 아니다.
이제 소비자 이익의 추구는 「더 강한 생산자」를 길러내는 효과적인 수단이지 의식의 균열과 갈등 속에서 비틀리고 억압돼야 할 「잘못된 욕망」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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