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 깨진 증시 … ‘펀드런’ 조짐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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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주가지수 바닥은 어디인가. 미국발 ‘베어스턴스 충격’으로 코스피지수가 1600 선 아래로 곤두박질하자 증권선물거래소 직원들이 주식시황판을 근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각오는 했지만 걱정했던 것보다는 충격이 크지 않았다’. 17일 각 증권회사 일선 창구 직원이 전한 객장 분위기다. 주말에 터진 미국발 ‘베어스턴스 충격’에 한국 코스피지수도 1.6% 떨어졌다. 그러나 5% 안팎 급락한 다른 아시아시장에 비해서는 낙폭이 상대적으로 작았다.

우려한 ‘펀드런’ 조짐도 아직은 나타나지 않았다. 삼성증권 김선열 Fn아너스 분당지점장은 “이미 시기를 놓친 탓에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금은 어디까지 가는지 다들 지켜보고만 있다”고 전했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증시가 1600 선을 이탈하면서 펀드런에 대한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날도 외국인은 6400억원을 팔아 치웠다. 신용위기 불안이 좀처럼 해결 조짐을 보이지 않자 외국인이 국내 자산을 계속 정리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은 이달 들어서만 3조원 가까이 판 것을 비롯해 올 들어서만 벌써 13조원 넘게 팔아 치웠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증시에 버팀목이 돼 온 펀드에서마저 자금이 빠져나간다면 ‘사자’ 세력이 실종, 증시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그러나 아직 펀드런까지 갈 상황은 아니라는 전망이 대세다. 신영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이후 신규 유입된 국내 주식형 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14.9%. 과거 2000년과 2002년 펀드런 사태가 났을 때는 평균 수익률이 -20%를 넘어서면서였다. 이를 감안하면 펀드런 우려가 생길 수 있는 코스피지수는 1480 선. 아직까지는 100포인트가량 여유가 있는 셈이다. 게다가 “적립식 펀드를 비롯한 장기 투자 문화의 정착도 펀드런에 대한 기우를 줄여 준다”고 이승우 연구원은 덧붙였다. 교보증권 이종우 센터장도 “지수가 1500 선 밑으로 내려갈 수 있겠지만 펀드런보다는 주식 손절매 하듯 서서히 환매가 진행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날 미래에셋증권 김상철 분당미금역지점장은 “투자자들이 관망하는 가운데 적립형 자금은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당분간 현금 비중 유지=2분기 반등을 감안해 저점 매수해야 한다던 주장은 1600 선이 깨지면서 쏙 들어갔다. 대신 이 같은 급락장에서는 추격 매도는 자제하고 조금 더 지켜보라는 주문이 대부분이었다. 메리츠증권 심재엽 투자전력 팀장은 특히 “당분간은 매수를 자제하고 현금 비중을 유지하라”고 조언했다. 굳이 사겠다면 환율 상승의 수혜가 예상되는 IT(전기전자)·자동차 정도에만 관심을 두라고 했다. 삼성증권도 3분기까지는 조정장이 이어질 것으로 예측하며 보수적으로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그렇지만 이미 주가가 충분히 싸진 만큼 중장기 투자자라면 매수할 만하다고 권했다. 대신증권 구희진 센터장은 “1600 선이 깨진 만큼 추가로 더 하락할 수 있겠지만 1600 선 이하에서는 사도 괜찮다”고 말했다.

유망 업종으로는 IT·자동차에 대한 추천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17일 시장이 급락하는 가운데서도 이들 업종의 대표주인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각각 0.55%, 1.73% 올랐다. 대우증권은 그러나 낙폭 과대로 반등 시 탄력이 예상되는 조선·해운·증권업종에도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고란 기자

◇펀드런=펀드 대량 환매 사태. 은행이 파산 위기에 처했을 때 고객이 예금을 빼기 위해 한꺼번에 은행으로 몰려가는 사태를 ‘뱅크런(bank run)’이라고 한다. 이에 빗대 주가가 떨어질 때 투자자가 한꺼번에 금융회사로 몰려가 환매를 요구하는 사태를 일컫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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