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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미·중 관계의 역학과 한국의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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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앞으로 한 세대 동안도 미·중 관계가 국제정치의 최대 화두가 될 것 같다. 역사상 어느 한 국가의 국력이 급성장하면 기존의 패권국과 부딪치곤 했기 때문이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으로 국력을 키운 영국이 유럽의 제패를 노리는 프랑스와 대결한 것이 나폴레옹전쟁이었고, 통일 이후 급성장한 독일이 패권국 영국과 겨룬 것이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그러니 세인의 관심이 미·중 관계의 향배에 쏠릴 만도 하다.

사실 미국은 20세기 초 이래 동아시아에서 세력 균형 정책으로 영향력을 키워 왔다. 30년대 일본이 중국 대륙을 휩쓸었을 때는 중국과 손잡아 일본을 견제했고, 49년 이후 공산당 정부가 중국 대륙을 지배했을 때는 일본과 손잡아 이를 견제했다. 70년대 이래 중국을 포용해 소련을 견제해 왔는데 91년 소련이 망하고 중국이 급성장하자 이제 중국 견제의 목소리가 등장한 것이다.

중국도 국력 성장을 반영해 동아시아를 자국의 영향권에 편입시키려 해왔다. 특히 90년대 중엽 즈음 외교의 톤을 부드럽게 바꾸기 시작했다. 그동안 불신했던 다자 국제기구도 적극 활용하고, 세계 중요 국가들과 양자관계도 강화해 왔다. 주변국들과의 국경분쟁도 협상을 통해 정리해 나가며 이미지를 개선하고 영향력을 조용히 확대시켜오고 있다.

이처럼 미·중 양국은 경쟁을 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앞으로 상당 기간 상호협력이 양국 관계의 대세가 될 것이다. 우선 중국은 최고의 우선순위를 경제성장에 두고 있다. 경제성장이 안 되어 실업이 늘어나면 이들의 불만이 공산당 지도부로 향할 터인데, 이는 아주 민감한 정치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의 경제성장은 자본과 기술 유입, 수출시장 모두를 미국에 깊이 의존하고 있기에 대미 협력에 상당히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중국을 끌어안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의 군사력은 아직 위협이 아니며 13억 인구의 중국과 협력하지 않으면 복잡한 국제문제들을 풀어나가기 힘들다. 중국을 봉쇄하는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싶어도 과거 초긴장의 냉전대결 때와는 달리 동아시아 국가들이 적극 나서주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결국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대결보다는 협력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이다. 최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와 중국의 미소(微笑)외교가 중첩되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미국을 멀리하고 중국을 가까이 하자는 주장이 등장했다.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에 대한 이념적 반발과 민족주의적 감성이 결합해 그런 주장들이 나왔던 것 같다.

정작 우리의 어깨 너머 국제정치의 큰 판에서는 미·중 협력이 대세인데 우리만 양국 대결을 전제로 선택외교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두 나라가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모를 실제 대결의 시점까지, 한국은 그 어느 한쪽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할 것이다. 그리고 미·중·일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정치에서 더 주변적 위치로 소외되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베트남은 중국의 미소(微笑)외교에 답해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심혈을 기울인다. 일본도 미국과 동맹을 강화하면서도 중국과의 협력을 모색한다. 이들은 이처럼 이념이나 감성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로 단수 높은 외교를 하고 있다.

이념과 감성에 치우치면 세계정세를 정확히 읽지 못하고 어디에 국익이 있는지 보지 못한다. 미국은 우리의 군사안보 동맹이고 중국은 협력 파트너다. 있는 그대로의 관계를 유지하며 안정적인 외교환경을 조성하고, 그 맥락에서 국내 개혁과 북핵 해결을 추진하는 것이 우리의 국익이었을 터다.

윤영관 서울대·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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