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교육개혁 공정경쟁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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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美國에선 이달이 고교 졸업시즌이다.
2주 후면 학년이 끝나고 졸업식이 거행된다.이를 앞두고 여기저기에서 소위 프롬(prom)이 한창이다.프롬은 고교 또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위해 여는 공식 댄스 파티다.프롬 중에서 가장중요한 것 이 바로 이 고교졸업생 프롬이다.교내 강당이나 근처호텔을 빌려 열리는 이 행사를 위해 남학생들은 대개 수십달러를내고 턱시도를 빌리지만 여학생은 어여쁜 드레스를 맞춰 입는다.
수백달러가 들어가지만 소년기를 마감하고 성년으로 들어서는 인생의 중요 고비를 맞아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려는 생각에서 무리한 경비도 마다하지 않는다.
워싱턴의 강 건너 버지니아州 랭글리고교는 이미 지난 4월말 인근 힐튼호텔에서 파티를 열었다.그 준비는 연초부터 시작됐다.
다시 말해 상급생들의 고교생활은 사실상 마감된지 오래다.대학 진학자들은 빠른 학생의 경우 지난해 크리스마스이전 에 입학이 결정돼 있고 나머지도 지금은 대개 완결돼 있다.
자녀들이 혹시 들뜬 분위기에 휩쓸려 탈선하지 않을까 학부모들은 신경을 곤두세우기도 하지만 지금 자식들은 홀가분한 마음으로자기가 선택한 파트너와 어울려 화려한 댄스 파티를 즐기고 있는것이다.일단 겉모양을 보면 확실히 풍요롭고 화 려하다.각박하고쓸쓸한 우리 고교졸업식,대학입시를 앞둔 고3생들의 힘겨운 학창생활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그러나 미국의 고교생활도 프롬만 있는 것은 아니다.학교가 있는한 경쟁은 어느 곳에나 있다.방법이 다를 뿐이지 우열경쟁은 어디에서나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봄 워싱턴을 둘러싼 환상도로(벨트 웨이)북쪽 메릴랜드州몽고메리郡의 여유있는 동네에서 있었던 일이다.월트 휘트먼고교와베데스다 체비체이스고교는 둘 다 일류 공립학교다.美학력평가고사(SAT)성적이 두 학교 모두 전국 평균보다 월등히 높다.말하자면 서울의 8학군인 셈이다.다른 점이라면 휘트먼고교쪽이 더 부자 동네라는 점이다.미국 부자 동네의 특성중 하나는 유색인종이 없거나 적은 것이다.특히 흑인이 보기 어려워야 한다.
체비체이스고교는 백인이 55.1%인데 휘트먼고교는 70.7%다.문제는 휘트먼고교에 자꾸 학생이 몰려드는데서 비롯됐다.고심끝에 郡교육당국이 학군 재조정을 해결책으로 내놓았다.휘트먼지역일부를 체비체이스쪽으로 떼어붙이는 안이다.휘트먼 학부모들은 당국에 연판장을 보내고 교내에선 항의문구를 새겨넣은 티셔츠를 갖춰입고 학부모회의를 매일 열며 저항했다.학부모의 극성은 동서양구별이 없음을 입증했다고나 할까.
다만 미국은 교육도 자본주의 개념으로 파악하는게 우리와 다를뿐이다.대개의 미국인은 교육이 철저한 투자다.가정에서 보편적으로 하는 투자가 있다면 그것은 주택구입과 교육이다.높은 교육은높은 소득과 직결된다.특히 사회가 분화.전문화. 첨단화하면 할수록 고급교육에 대한「투자」가 중시된다.
휘트먼고교는 일종의 투자대상이다.실제로 이들은 몇년을 기다려타지역보다 고액을 치르고 이곳의 학부모가 된 사람들이다.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교육개혁안의 대입제도개선은 미국방식을 모델로 삼은 것으로 이해된다.미국방식이 되더라도 예시한대로 나름대로의 경쟁은 여전히 남을 것이다.
사회가 선진화할수록 경쟁승부의 결과는 더욱 큰 차이를 초래하기 때문이다.개혁안이 시행되더라도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보아오던 불공정경쟁의 소지는 자동적으로 줄어든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개혁」의 성공여부는 따라서 경쟁 을 하더라도어떻게 깨끗하게 경쟁할 것인가 하는 모든 당사자들의 의지 여부에 달렸다 할 것이다.장기간 진통 끝에 나온 이번 案은 성공적으로 시행돼야 한다.우리 교육은 그동안 너무 불행했다.
〈美洲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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