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어린이] 책몇년에 걸친 등나무 이사 … 별별일 다 생기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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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큰 나무 옮기기 대작전을 펼치다
쓰카모토 고나미·이천용 글
이치노세키 게이·조예정 그림,
양광숙 옮김
웅진주니어,
56쪽, 9000원, 초등생

책 내용은 간단하다. ‘커다란 등나무 네 그루를 20킬로미터 떨어진 장소로 옮겨 심었다’가 전부다. 하지만 그 과정 하나하나는 결코 간단치 않다. 나무를 옮겨 심는 과정은 시종일관 진지하고 조심스럽다.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절로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글을 쓴 쓰카모토 고나미의 직업은 ‘나무 의사’다. 나무의 질병을 진단·치료하고 큰 나무나 고목을 옮겨 심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책은 그가 1994년 5월부터 2년 여에 걸쳐 일본 도이치현 아시카가 식물원에 있는 등나무를 새 식물원 부지로 옮겨 심으며 겪은 실제 경험담이다.

식물원에는 심은 지 80년 된 거대한 등나무가 네 그루 있었다. 가장 굵은 것은 밑동 둘레가 3.6미터, 지름은 1미터가 넘었다. 그 나무가 차지하고 있는 넓이는 자그마치 600제곱미터로, 버스 20대가 모여있는 넓이와 같았다. 도시재개발 계획에 따라 이사할 처지가 된 식물원은 무려 4년 동안이나 그 등나무를 옮겨 심을 사람을 애타게 찾았다. 이론상 밑동 지름이 60㎝ 이하인 등나무만 옮겨 심기가 가능하다니, 섣불리 엄두를 못 내는 게 당연했다.

저자가 용기를 낸 건 “등나무의 생명력을 믿어보자”는 생각에서였다. 등나무 이사를 위한 첫번째 일은 ‘꽃대 자르기’와 ‘뿌리 자르기’였다. 꽃대 자르기란 꽃대에서 꽃이 피는 부분을 잘라내는 작업이다. 꽃이 지고 열매가 열리면서 나무의 영양분을 빼앗아가므로 미리 잘라내는 것이다. 사방팔방으로 무려 60미터나 뻗어 있는 등나무의 뿌리 역시 트레일러 크기에 맞춰 8미터만 남기고 모두 잘랐다. 작업 중 겉으로 드러나는 뿌리는 마르지 않도록 일일이 물이끼로 감쌌다. 정리가 끝난 뿌리를 다시 제자리에 묻는 것으로 일단 1차 작업은 끝났다.

한 달 뒤에는 가지를 잘라냈다. 세로 30미터, 가로 20미터나 뻗어 있는 등나무 가지를 운반용 트레일러에 실을 수 있는 크기로 만들어야 했는데, 한 번에 다 잘라낼 수는 없었다. 잎사귀가 너무 적어지면 잎사귀에서 만드는 영양분이 부족해 등나무가 말라버리기 때문이다. 94년 봄과 95년 가을, 이렇게 두 차례에 걸쳐 가지를 잘라 세로 12미터, 가로 6미터 크기가 되도록 만들었다. 잘라낸 면이 썩지 않도록 소독하는 일도 큰 일이었다.

이삿날은 96년 2월 15일부터 2월 28일 사이로 정했다. 나무 속의 수분이 가장 적어 기중기로 들어올릴 때 가볍고, 줄기나 가지에 상처가 덜 나는 때여서였다.

옮기는 과정, 심는 과정 모두 긴장감의 연속이다. ‘기중기로 들어올릴 때 줄기가 다치면 어쩌나’하는 걱정은 나무 줄기에 석고 붕대를 감는 아이디어로 해결했다. 또 이동 중 등나무가 추울까 트레일러마다 커다란 비닐 천막을 씌우고 온풍기를 틀었다. 나무를 심은 트레일러 앞 뒤로는 경비차와 호위차가 12대나 따라갔다.

나무를 옮겨 심고 1년이 지나 새 식물원은 문을 열었다. 등나무는 어떻게 됐을까. 놀라지마시라. 새 자리에서 무려 600만 송이의 꽃을 피워낸 것이다. 장하고 고맙다.

이 책은 딱딱한 과학 지식을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풀어낸 ‘집요한 과학씨’ 시리즈의 스물 세번째 책이다. 책 말미에 부록처럼 국내 전문가의 의견도 수록됐다. 전작 『침팬지에게 말을 가르치다』『꿈의 신비를 밝히다』『야생 고양이를 찾아가다』 등도 평범한 생활 소재를 과학적인 관점에서 맛깔스럽게 풀어낸 책들이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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